삼성디스플레이가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올레드(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중국 BOE에 역대급 승소를 거둔 가운데, BOE의 기술 탈취 수법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지적이다.
ITC는 BOE가 미국에 올레드 패널을 15년간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이례적 판결을 내렸는데 그만큼 BOE의 조직적인 불법 기술 탈취에 강도 높은 처벌로 대응하려는 것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ITC는 최근 공개한 총 400여 페이지 규모의 조사 보고서를 통해 “BOE가 삼성디스플레이의 영업비밀을 부정 취득했다는 증거는 압도적이다”고 밝혔다.
ITC는 “삼성디스플레이의 보완 조치는 탁월한 수준이었다”며 그런데도 이를 허문 BOE의 교묘한 수법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BOE가 단순히 기술을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인력 유출과 협력사 네트워크까지 총 동원해 삼성디스플레이의 영업비밀을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탈취했다는 분석이다.
인재 유출이 기술 유출…전현직 임직원 가담
우선 ITC는 BOE가 삼성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자들을 빼내 고의로 기술 탈취를 노렸다고 봤다.
BOE가 삼성디스플레이 전·현직 직원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고액의 연봉과 보너스를 약속하며 취업을 유인했다. BOE로 건너간 직원들은 핵심 엔지니어부터 공정 전문가, 장비 기술자 등 광범위했다. 이들은 BOE로 이직한 후에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했던 업무에 배치돼 기술 탈취 공범이 됐다.
BOE 기술 탈취에는 일부 삼성디스플레이 협력업체들도 공모했다.
BOE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협력사 중 T업체를 콕 집어 기술 탈취에 가담시켰다. 이 업체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올레드(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접착 기술이 적용된 ‘3D 라미네이션’ 장비를 함께 개발한 회사다.
이 기술은 패널에 유리나 다른 소재를 빈틈없이 밀착시켜 곡면 형태를 만드는 것으로, 고부가 제품인 곡면 디스플레이나 커브드 올레드(OLED) 패널을 제작하는 데 사용한다.
장비는 T업체가 만들었지만 제작 기획이나 핵심 설계, 구조 등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비롯됐다. BOE는 이 점을 노려 해당 업체에 고의로 접근한 뒤 기술을 빼내려 했다. 이 업체의 기술 유출 사건은 이미 지난 2023년 대법원에서 유출에 가담한 임직원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요청하신 S사 기술 보냅니다” 공급사도 협력
BOE는 삼성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여러 협력업체들을 통해 끈질기게 기술 확보를 노렸다.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협력사들에게 접촉해, ‘삼성’ 또는 ‘S사’ 등을 언급하며 회사 특정 기술에 대한 정보를 명시적으로 요청했다. T업체 외에 일본의 C장비 회사도 BOE가 비밀리에 요구한 삼성디스플레이의 영업비밀을 넘긴 것으로 ITC는 판단했다.
ITC는 BOE의 영업비밀 침해로 앞으로 14년 8개월 동안 올레드 패널을 미국에 수출할 수 없다는, ‘제한적 수입 금지 명령(LEO)’을 내린 상태다.
업계에선 이번 처벌 수위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영업비밀과 기술의 개발 소요 기간을 모두 합친 기간만큼, BOE의 올레드 제품을 수입 금지해달라고 ITC에 요청했는데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특허 침해 이어 영업비밀 침해까지 승기…손배소도 가능
ITC의 이번 판결은 예비 결정이다. 오는 11월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예비 결정은 그대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BOE는 ITC에 수많은 증거를 제출해 설득하려 애썼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ITC는 보고서에서 “BOE가 제출한 증거로는 삼성디스플레이의 대부분 주장이 반박되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BOE가 애플 공급망에서 퇴출당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등에 탑재된 디스플레이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다만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4월 BOE의 올레드 ‘특허 침해’ 소송에서 이긴데 이어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도 승기를 잡으며, BOE와 애플 공급망 경쟁에서 우위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외에도 미국 현지 법원을 통해 BOE를 상대로 특허 침해와 영업비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번 판결이 오는 11월에 확정될 경우 민사 소송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