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BLACK PINK)는 음악이다.
16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체조경기장)에서 지수·제니·로제·리사의 무대를 보면서 퍼뜩 든 생각이다.
이날 펼쳐진 월드 투어 ‘본 핑크’ 서울 공연은 블랙핑크가 세계 팝 시장에 어떻게 안착할 수 있었던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 팀은 최근 정규 2집 ‘본 핑크’로 오피셜 차트·빌보드 차트 등 영미 팝 시장을 비롯 유튜브와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등에서 K팝 신기록을 잇따라 썼다.
각각 ‘인간 디올·샤넬·생로랑·셀린느’로 통하며 ‘고급 백화점 1층 점령 걸그룹’으로 불리는 고급스런 이미지가 블랙핑크 인기의 1순위인가. 아니다. 다수의 히트곡을 보유해 ‘뿅봉'(블랙핑크 응원봉)을 든 블링크(Blink)의 떼창을 유도한 노래 그 자체였다.
정확히 3년11개월 전 블랙핑크는 아이돌의 성지로 통하는 이곳 체조경기장에서 첫 콘서트를 열었다. 당시 주가를 높이고 있었던 이들은 당시에도 좋은 무대를 보여줬지만 이번에 국내 두 번째 콘서트에서 4년간 더 성장했음을 증명했다.
최고 히트곡 중 하나인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HYLT)으로 시작한 공연에서 멤버들은 강렬한 사운드에 묻히지 않을 정도로 보컬이 탄탄해졌고, 일부 밴드 사운드에 들려준 곡들에선 능수능란한 호흡을 보여줬다.
‘휘파람’ ‘러브식 걸즈’ ‘뚜두뚜두’ ‘붐바야’ ‘마지막처럼’ 등 히트곡을 부를 때는 떼창이 나왔다. 2집 선공개곡 ‘핑크 베놈’과 타이틀곡 ‘셧 다운’ 무대에선 큰 함성이 쏟아졌다.
특히 개별 무대에선 일취월장(日就月將)한 멤버들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수는 붉은 옷을 입고, 쿠바 태생의 팝스타 카밀라 카베요의 ‘라이어’ 커버 무대를 화려하게 소화했다. 세련된 사운드에 “댄싱 인 더 문나이트”라는 노랫말이 귀에 감기는 미공개곡을 들려준 제니는 풀 문(Full Moon)이 가득한 스크린을 배경으로 남성 댄서와 듀엣 춤을 아름답게 연출했다.
로제와 리사는 이미 인기를 누린 솔로 활동곡들을 각각 2곡씩을 들려줬다. 로제는 ‘하드 투 러브’와 ‘온 더 그라운드’를 연이어 부르며 로킹한 무대를 선사했고, 리사는 ‘라리사’와 ‘머니’ 무대에서 랩·실력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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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블랙핑크 월드 투어 ‘본 핑크’ 서울 콘서트. 2022.10.16.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산하의 안무가 겸 댄서 레이블인 YGX와 협업도 일품이었다. 상당수 무대의 군무는 네 멤버로 시작해 YGX 댄서들이 중간에 합류하는 점층법식 형태를 도입했는데, 에너지가 점차 세지는 걸 상징하는 듯했고 그래서 더 역동적이었다.
이번 앨범 활동의 메인 콘셉트인 ‘베놈’을 상징하는 글자인 브이(V)를 녹여낸 변형 무대도 일품이었다. 메인 무대 위에서 V자 모양의 가변 무대가 오르락내리락 하며 멤버들의 동선을 유연하게 만들었고, 긴장감도 조성했다. 천장에도 V자 형태로 조명이 설치돼 다채로운 빛을 선사했고 특히 3단 케이크를 뒤집은 듯한 대형 조명이 접혀졌다 펴졌다 입체감을 부여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콘서트 전개 자체도 세련되고 깔끔했다. 일부 다른 콘서트의 경우 지지부진한 전개와 멘트가 길어져 왕왕 늘어지는 편이 있는데, 블랙핑크 콘서트는 음악 중심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블랙핑크 콘서트는 묘하게 관능적인데 그게 성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균형감이 일품이었다. 강렬한 음악과 이런 이미지들을 기반 삼아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의 표출이 블랙핑크 인기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대 위에서 오롯하게 구현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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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블랙핑크 월드 투어 ‘본 핑크’ 서울 콘서트. 2022.10.16.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예컨대 리사는 ‘머니’ 무대에서 폴댄스를 선보였는데, 한때 성적 대상화됐던 이 춤은 최근 건강한 자신감 표출의 상징으로 통한다. 리사는 초보라며 겸손해했지만, 긴 다리로 폴을 휘감을 때 우아함을 뽐내는 등 근사한 동작들을 선보여 큰 환호성을 자아냈다.
수많은 여성들이 따라하는 선망의 대상이 된 블랙핑크의 이번 콘서트에 태국·일본·프랑스·영국 등 해외 여러 나라 팬들 만큼이나 유독 여성 팬들이 많았던 이유다. 해당 콘서트 예매처인 인터파크 예매자 통계에 따르면, 여성 관객이 69.1%였다. 연령별로 구분하면 10~20대 예매 비율이 77.8%(10대 22.3%·20대 55.5%)를 차지했다. 최근 블랙핑크의 팬이 됐다는 서울에 사는 회사원 김소영(26)씨(가명)는 “너무 예쁠 뿐만 아니라 ‘본업존잘'(본업을 잘해서 매력 있다는 뜻)이라 따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블랙핑크의 상징색인 분홍과 검정을 위아래로 차려입은 패션 피플들이 많았다. 다른 아이돌 콘서트보다 스타일이 근사한 관객들도 더 눈에 띄었다. 본인들을 꾸미는 데 거리낌 없는 모습이 당당했다.
전날에도 열린 이번 콘서트는 양일간 각각 1만명 씩 총 2만명이 운집했다. 360도 공연 형태를 차용하지 않으면, 이 공연장을 최대 채울 수 있는 관객은 약 1만2000명인데 YG는 안전 등을 고려해 스탠딩 석을 없애고 1만명 규모로 맞췄다는 전언이다. 그런데 블랙핑크의 인기와 퍼포먼스를 감안할 때 체조경기장은 사실 작은 편이다. 블랙핑크가 머지 않아 K팝 걸그룹 처음으로 고척스카이돔과 올림픽주경기장에 입성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고척스카이돔엔 아리아나 그란데, 빌리 아일리시 등 해외 여성 팝스타들이 공연했고 올림픽주경기장 무대에 레이디 가가와 아이유가 올랐다.
우선 블랙핑크는 월드투어를 시작한다. 오는 25~26일 미국 댈러스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아레나(AMERICAN AIRLINES ARENA)를 시작으로 북미 7개 도시에서 14회 공연하는 투어를 돌고 11~12월 유럽 7개 도시에서 10회차 공연을 선보인다. 내년엔 아시아, 오세아니아로 향한다. 총 150만명 관객 동원을 예고하고 나섰다. K팝 걸그룹 최대 규모이자, 월드투어로 200만명을 동원한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잇는 규모다. 로제는 이날 콘서트 막판에 “블링크 응원을 많이 받아 월드투어도 멋지게 하고 올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