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투자사 대표가 400만 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개인 도박과 암호화폐 거래에 유용한 혐의로 체포돼 연방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그의 챗GPT 대화기록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허용했다.
이번 사건은 한인 사업가 리처드 김(Richard Kim·39)이 연루된 대형 투자사기 사건인 동시에, 생성형 AI 대화기록이 형사수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주요 판례로 주목받고 있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뉴욕 거주자인 김 씨는 암호화폐 게임 스타트업 제로 엣지(Zero Edge)의 전 최고경영자(CEO)로, 증권사기와 전신사기 혐의로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에 기소됐다. 두 혐의 모두 유죄가 인정될 경우 각각 최고 징역 20년형이 선고될 수 있다.
김 씨는 2024년 3월 제로 엣지를 설립하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 앱을 개발하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이 회사는 크랩스, 룰렛, 바카라, 블랙잭 등 온체인 카지노 게임 개발을 사업 모델로 내세웠다.
제로 엣지는 2024년 6월 시드 투자 라운드에서 430만 달러를 유치했으며, 당시 기업가치는 2,600만 달러로 평가됐다.
그러나 검찰은 김 씨가 투자금 가운데 약 380만 달러를 개인 코인베이스 계정으로 이체하고, 약 100만 달러를 바이낸스, 크라켄, 백팩 등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로 송금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씨는 2024년 6월 말 6일 동안 코인베이스와 크라켄 계정에서 암호화폐 도박 사이트 ‘셔플(Shuffle)’의 개인 계정으로 약 700만 달러 규모의 거래를 진행했으며, 순이체액만 약 10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셔플은 스스로를 ‘VIP 크립토 카지노 및 스포츠북’이라고 소개하는 온라인 도박 사이트다.
검찰은 김 씨가 약 45만 달러를 소유자가 확인되지 않은 다른 암호화폐 지갑으로 옮기고, 크라켄 계정에서 개인 체킹 계좌로 14만5,000달러를 송금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소장에 따르면 김 씨는 이미 투자자 자금으로 개인 암호화폐 거래를 시작한 뒤에도 추가 투자금을 계속 모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2024년 6월 29일 일부 투자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회사 자금 367만 달러 손실에 대해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해당 손실이 시드 투자금으로 레버리지 거래를 하다 발생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7월 9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또 다른 이메일에서는 “신뢰를 저버린 일을 전적으로 인정한다”며 “여러분은 내가 위대한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믿었지만, 나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그 신뢰를 배신했다”고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검찰은 김 씨가 투자자들에게 손실 원인을 개인 도박이 아닌 ‘재무 관리 전략(treasury management strategy)’의 결과라고 설명하며 실제 사용처를 숨기려 했다고 밝혔다.
체포 이후 김 씨는 FBI 조사에서 투자자들이 자신의 거래 사실을 알기를 원했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행동이 “처음부터 명백히 잘못됐다”고 인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투자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는 자신의 횡령을 “뿌리 깊은 도박꾼 심리(gambler’s mentality)”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씨는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에서 외환 및 신흥시장 거래 부문 임원을 지낸 금융 전문가다. 2018년 골드만삭스를 떠나 암호화폐 투자회사 갤럭시디지털에 합류했으며, 골드만삭스의 암호화폐 거래 데스크 구축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갤럭시디지털은 제로 엣지 투자자 중 한 곳이었다. 갤럭시 측은 “리처드 김은 2024년 3월 회사를 떠나 제로 엣지를 창업했으며, 갤럭시는 이 회사에 소규모 재무적 투자를 했다”며 “김 씨의 행위를 확인한 뒤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관계 당국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이번 사건에서는 김 씨의 챗GPT 대화기록도 쟁점이 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의 로나 쇼필드 판사는 지난 23일 김 씨가 제기한 이의 신청을 기각하고, 연방 검찰이 OpenAI를 상대로 발부받은 챗GPT 계정 수색영장을 집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김 씨 측은 체포 이후 챗GPT를 법률 조사와 방어 전략 검토에 활용했기 때문에 해당 대화 내용은 변호사-의뢰인 비밀보호(attorney-client privilege)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색영장이 지나치게 광범위해 변호 전략까지 검찰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챗GPT는 변호사가 아니며 AI와의 대화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법률 상담으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쇼필드 판사는 AI 챗봇과의 대화 자체는 변호사와의 상담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의 수색영장 집행을 허용했다. 다만 OpenAI로부터 확보한 자료 가운데 실제로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내용이 포함됐는지는 향후 별도의 절차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AI 대화기록에 대한 법원의 첫 판단은 아니지만, 앞서 다른 생성형 AI 서비스에 대한 유사 판결에 이어 챗GPT 기록에 대한 검찰의 수색을 허용한 첫 주요 판례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한인 투자사 대표의 투자금 횡령 사건을 넘어, 생성형 AI 시대에 이용자의 대화기록이 어디까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사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