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전 마지막 대통령 특별사면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던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권을 최종 행사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주말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등에 대한 사면 여부를 숙고한 끝에 사면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계·종교계·시민사회계를 중심으로 문 대통령 퇴임 전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지사, 이 부회장과 정 전 교수의 사면 필요성을 건의하면서 막판까지 고심을 했지만 사면의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각의 사면 대상자들에 대한 이렇다 할 사면 명분과 국민공감대를 찾지 못하면서 일괄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사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청와대 내부적으로도 공식적으로 사면에 관련해 논의된 바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사면에 필요한 절차를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의 사면 결심에 대한 마지노선을 지난 주말까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해 왔다. 문 대통령의 사면 의중이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되고, 사면심사위원회 소집과 심의를 거쳐 국무회의 안건 상정까지 필요한 시간을 역산할 경우를 전제한 물리적 ‘데드라인’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금요일 최종적으로 사면 검토 대상자들에 대한 최종 보고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0일, 21일 2회에 걸쳐 진행됐던 사면심사위 나흘 전인 12월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한명숙 전 총리의 복권에 대한 문 대통령의 뜻을 전달받았다는 점을 12월27일 KBS ‘일요진단’ 인터뷰에서 사후 공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오후까지 박범계 법무부 장관 중심의 사면심사위원회 소집 일정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교정당국과 논의를 거쳐 수천 명의 사면·복권 대상자를 선정하는 통상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고 소수 인원에 대한 사면을 진행할 경우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희박하다는 평가다.
오는 6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사면 안건만 원포인트로 처리하는 방안이 남아있지만, 퇴임 사흘 전 지나친 정무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면권 행사에 대한 부담감을 가져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통령의 사면 여부가 핵심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사익추구형 범죄’란 점에서 그동안 내세웠던 국민통합이라는 사면 명분과도 맞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을 5대 중대 부패범죄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한 바 있다. 올해 신년 특사에서 박 전 대통령과 한 전 총리의 연계 사면·복권이 이뤄지면서 공약 파기와 함께 기계적 균형을 맞춘 특사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이런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을 상수로 놓고, 김 전 지사와 정 전 교수를 함께 사면할 경우 ‘끼워넣기식 사면’이라는 비판 여론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해 원칙론에 입각한 판단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사면은 사법 정의와 부딪칠 수 있기 때문에 사법 정의를 보완하는 차원에서만 행사돼야 한다”며 “사법 정의에 부딪칠지(여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몫”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12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9~30일 실시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응답률 7.4%,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결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찬성은 40.4%, 반대 51.7%로 반대 의견이 더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지사의 경우 찬성 28.8%, 반대 56.9%로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정 전 교수 역시 찬성 30.5%, 반대 57.2%로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반대로 이 부회장의 경우 사면 찬성 응답이 68.8%로, 반대 응답(23.5%)보다 찬성 의견이 현저히 높았지만 특정 경제인만 사면하는 것에 대한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아예 사면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사면을 하지 않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중은 이날 주례회동을 통해 김부겸 국무총리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 전 ‘사면 제로’ 방침이 정해지면서 6일 임시국무회의 소집 필요성도 자연스레 사라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MB와 김 전 지사에 대한 사면을 않기로 한 배경에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MB 사면 시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설 가능성이 높고 김 전 지사를 함께 사면할 경우 중도층과 보수층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양 진영은 물론이고 중도층도 좋아하지 않는 사면을 문 대통령이 모두 떠안는 부담을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3일 오전 10시로 예정된 문 대통령 주재의 마지막 국무회의는 오후로 변경해 형사소송법·검찰소송법 개정안 등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 법안을 공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