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2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에서 근무했다. 헌데 그 때까지만 해도 잠수함에는 토끼를 태우고 다녔다. 토끼가 잠수함 내 공기나 수압에 생긴 이상을 알려주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밀폐된 잠수함 안의 공기가 나빠지면 그 중의 산소 농도 변화에 사람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토끼가 먼저 호흡 곤란으로 쓰러지게 되는 것을 보고 잠수함을 물 위로 떠오르게 해 환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게오르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면서 사회를 감시하는 작가의 사명을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은 탄광 안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데려갔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는 메탄가스나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에 유독 민감해서 카나리아가 울지 않거나 움직임이 둔해지는 이상징후를 보이면 광부들은 바로 갱도에서 대피했다.
이 역시 잠수함 속 토끼처럼 인간이 알아채지 못하는 위험 징후를 미리 감지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토끼나 카나리아가 생명의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일종의 비상 신호였던 셈이다.
시경(詩經)에 ‘상두주무(桑土綢繆)’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뽕나무 상(桑), 뿌리 두(土), 빽빽할 주(綢), 얽을 무(繆). ‘상두’, 뽕나무 뿌리 껍질은 습기를 막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주무’는 칭칭 감는다는 뜻이다. 이는 새가 장마가 오기 전에 뽕나무 뿌리를 물어다가 둥지의 새는 곳을 미리 막아 큰 비에 대비하는 지혜를 말한다.
이처럼 동물들은 생태계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에서도 미리 특이한 행동을 보인다. 수 년 전 스리랑카에서 지진과 해일이 발생했을 때도 동물들은 높은 지역으로 미리 대피했다. 땅속 흔들림이나 지하수의 변동, 기압과 전자파 변화 등의 전조를 알고 먼저 움직인 것이다.
허나 인간은 과거부터 홍수와 가뭄, 태풍 등 자연재해를 겪어 왔으며 큰 피해를 입고 난 뒤에야 비로소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던 경험이 너무나 많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이상기후의 발생으로 인한 각종 재난 재해다. 홍수, 폭염, 가뭄, 산불 등이다. 미국은 지금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한국은 물난리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세계가 다 마찬가지다.
이러한 위험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재해에 대한 대처기술이나 방법을 몰랐던 과거의 것과는 달리 현대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과학기술의 진보로 인해 자초된 위험이다. 다시말해 무지에서 겪었던 것이 아닌 더 잘살고자 하는 과잉욕구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 모두가 우리의 삶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만들었던 과학기술의 발달이 ‘위험사회’의 요인이 된 셈이다.
마크 트웨인이 일찍이 ‘인간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막연한 믿음이 방심을 낳고 수많은 전조(前兆)에 주의를 게을리하기 때문이란 거다. 재난이 없을 수 없지만 재난에 강할 순 있다. 대처 뿐이다. 위험을 감시하는 ‘잠수함 속의 토끼’, ‘갱도의 카나리아’ 그리고 ‘상두주무’ 같은 것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