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마블리’ 밀리지 않는데 액션 쾌감 아쉬움…’이터널스’
마블 페이즈 4의 진짜 시작이다. 이전에 본 적 없는 10명의 불멸의 히어로가 등장해 새 페이즈에 접어든 마블 세계관의 확장을 보여준다. 거대한 세계관 속에 다양성을 중시한 마블의 새로운 블록버스터 ‘이터널스’다.
영화는 기원전 5000년 우주를 창조한 신적인 존재 셀레스티얼의 지시로 지구에 온 불멸의 히어로 ‘이터널스’가 인간을 먹이로 삼는 돌연변이 포식자 ‘데비안츠’를 처치하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히어로 무비 그 이상의 거대한 서사로 인류 문명사를 포함해 우주의 탄생과 파괴 등을 어마어마하게 넓게 펼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 아즈텍 제국, 1945년 원폭으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 등을 거쳐 현재까지 인류 역사의 변곡점들을 재현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이야기는 수 세기 전 궤멸한 줄 알았던 데비안츠가 더 강해진 모습으로 21세기 런던 한복판에 나타나며 시작된다. 데비안츠를 발견한 이터널스 멤버 세르시(젬마 찬)는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고 나머지 멤버들을 찾아 나선다.
전반부는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기 위해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이터널스 멤버들을 모으는 여정을 그린다. 세르시는 자신을 버린 전 연인이자 이터널스의 리더 역할을 해온 이카리스(리처드 매든)와 재회하고 테나(앤젤리나 졸리), 길가메시(마동석) 등도 하나둘씩 팀에 합류한다. 해당 장면이 155분에 달하는 전체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늘어지는 측면이 있다.
거대한 이야기지만 각각의 캐릭터와 드라마는 살려냈다. 이들을 소집하고 특징과 관계를 설명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퍼히어로 10명은 동양인 여성, 아동, 흑인, 성소수자, 청각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을 대표하는 인물로 구성됐다. 위협적인 물체도 꽃잎으로 바꿔 버리는 물질 변환 능력을 가진 세르시, 날아다니며 눈에서 에너지 빔을 쏘는 이카리스, 우주 에너지를 이용해 온갖 다양한 무기를 만들어 내는 테나, 상대의 정신을 조종하는 드루이그(베리 케오건) 등 각기 다른 초능력은 눈을 붙든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외부의 적이 아닌 이터널스 내부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이터널스 멤버들은 오랜 세월 함께하며 깊은 우정뿐 아니라 질투, 사랑 등 다채로운 감정을 쌓아간다. 감독은 이터널스들의 신념, 정체성을 부각하며 딜레마에 빠진 이들의 갈등을 비춘다. 그 중심에는 세르시와 이카리스가 있다. 연인이었던 이 둘은 존재 이유, 인류를 대하는 자세 등에서도 이견을 보이며 충돌한다.
내부에서 싸우고, 심리적인 묘사도 많은 탓일까. 액션 시퀀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액션의 양이 기존 마블보다 많지 않을뿐더러 인류의 적 ‘데비안츠’를 별다른 캐릭터가 없는 익명의 존재로 처리해 이들을 처치하고 맞서는 과정에서도 쾌감은 적다.
국내 팬들의 관심을 끈 배우 마동석의 존재감은 세계적 스타들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마블 영화에서 첫 한국인 히어로로 분한 그는 물리적 힘이 가장 강한 길가메시 역을 맡아 핵 주먹으로는 성에 안 차 따귀를 날려 데비안츠를 쓰러뜨린다. 화려한 초능력을 사용하는 다른 멤버들의 액션보다 타격감 넘치는 한 방이 더 눈길을 끈다. 전매특허 ‘마블리’로 변신, 익살스럽고 귀여운 매력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기에 방탄소년단의 음악도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영화 ‘노매드랜드’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정성과 깊이 있는 메시지를 고루 담는 그의 연출력이 히어로 액션물과는 다소 삐거덕거린다. 주특기는 여전하지만 광활한 설정에 철학적인 주제까지 다뤄서인지 사건 자체를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