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금과 은 등 안전자산 가격이 급등했고,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은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갔다. 여기에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가 뚜렷한 약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자산시장 전반의 흐름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25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흐름을 중심으로 올해를 대표하는 주요 시장 이슈들을 정리했다.
관세 쇼크 뒤 AI 랠리…달러만 소외된 반등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이른바 ‘해방의 날(liberation day)’에 발표한 관세 조치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강한 충격파를 던졌다. 발표 직후 며칠간 주식·통화·채권 시장은 수년 만에 보기 드문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미국 대표 주가지수인 S&P 500 지수는 불과 며칠 사이 최대 15% 급락했고,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는 57.5까지 치솟아 장기 평균치인 약 20을 크게 웃돌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관세 충격 직후 시작된 올해 첫 실적 시즌은 투자 심리에 뚜렷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미국 기술 대형주의 견조한 실적과 AI 투자 붐의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주가는 빠르게 반등했다. 기술주로 자금이 몰리면서 미국의 초대형 기업들은 시가총액 수조 달러 고지를 잇달아 돌파했다. 이 랠리 속에서 엔비디아의 주가는 4월 저점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하며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증시의 향방은 그 어느 때보다 AI 거대 기업들의 성과에 밀접하게 연동되는 구조가 됐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주식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 니암 브로디-마추라는 “미국 기술 섹터 전체의 가치는 21조 달러에 달하며, AI가 이 막대한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가 현재 금융시장의 핵심 쟁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AI를 두고 “미래를 뒤흔들 수밖에 없는, 외면할 수 없는 전면적 트렌드”라고 평가했다.
달러에 대한 시각도 크게 흔들렸다.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 기대 속 급등했던 달러화는 2017년 이후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1월 취임 직전부터 하락세로 돌아섰고, 4월 관세 발표 이후 낙폭이 더 커졌다. 이후 주식과 채권 시장은 상당 부분 회복했지만, 달러지수는 여전히 당시 저점 대비 상승률이 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공포’가 지배한 2025년 시장…금은 날고 국채·가상자산은 흔들렸다
2025년 투자자들의 행동을 지배한 또 다른 키워드는 ‘공포’였다. 관세에 대한 공포, 급증하는 미국 부채에 대한 공포,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 전쟁에 대한 공포가 겹치면서 안전자산 ‘금’은 이 모든 불안을 흡수했다. 여기에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자 ‘놓치면 안 된다는 공포(FOMO)’까지 더해졌다.
금 가격은 3월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는 4500달러라는 이정표에 도달했다. 연간 상승률 71%로, 1979년 이후 최고의 기록이다. 이러한 랠리는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에 대한 인식 변화도 반영한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여러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을 달러에서 금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는 일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국가로 꼽힌다. 인플레이션, 대규모 재정지출 계획, 전통적 매수자의 수요 감소가 겹치며 일본 국채 시장에는 대규모 매도세가 나타났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9%p(포인트) 올라 약 20년 만에 최고치인 2.04%까지 치솟았고, 30년 수익률은 1.1%p 급등해 3.43%를 기록했다.
그동안 일본 국채는 변동성이 거의 없는 안전자산으로 여져졌지만, 장기 국채를 누가 얼마나 사줄 수 있느냐를 둘러산 수급 불균형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일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영국·프랑스·미국 등 다른 주요국으로도 번지고 있다. 각국 정부의 막대한 차입 규모로 인해 초안전 자산으로 인식되던 국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부 국가는 장기물 국채 발행을 줄이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롤러코스터 같은 한 해를 보냈다. 연초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산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가격이 연이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환호했다.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뿐 아니라 이더리움, 솔라나 등 주요 토큰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과 거래소 제미니가 상장하는 등 암호화폐 IPO(기업공개) 소규모 붐도 나타났다.
그러나 파티는 오래가지 않았다. 레버리지 확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암호화폐 가격은 급락했고,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0월 최고점 대비 30% 가까이 하락상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