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도 워싱턴의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유대 박물관 정문 앞. 21일 밤 9시경(현지 시간) 시카고 출신의 31세 남성이 이스라엘에서 온 한 살 적은 외교관을 권총으로 무참히 살해했다.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야론 리신스키(30)와 사라 밀그림(26)은 이날 유대 박물관에서 젊은 외교관들을 위한 연회에 참석했다가 나오던 중 갑자기 총에 맞아 숨졌다.
이들을 포함 4명에게 총격을 가한 로드리게스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총격범은 “팔레스타인을 위해, 가자지구를 위해서”라고 기소장에 진술했다.
하지만 피살된 피해자 2명은 분열을 해소하고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교류와 화해에 열정이 있는 젊은 연인 외교관이었다.
밀그림은 25일 이스라엘로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남자 친구의 부모를 보러 가기로 했다.
밀그림의 어머니 낸시는 딸이 떠나면 워싱턴의 딸 집으로 가 홀로 남은 반려견을 돌봐주기로 했다.
21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폰에 뉴스 알림이 떴다. 딸이 소속된 ‘미국 유대인 위원회’ 행사장 밖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즉시 연방수사국(FBI)과 지역 경찰서에 연락했지만 아무런 소식도 못 얻었다.
휴대폰 위치 추적 앱을 켜고 딸의 위치를 확인하자 총격 사건이 발생한 유대인 박물관이 표시됐다.
잠시 후 예히엘 라이터 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대사는 밀그림과 남자친구가 사망했다고 전하며 애도를 표했다.
낸시는 총격 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남자 친구가 딸에게 약혼반지를 샀다는 것을 알았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종교 문화적 가교를 추구했던 리신스키
리신스키는 이스라엘에 출생해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몇 년을 지난해 16세에 다시 이스라엘로왔다.
이스라엘 군에서 복무했다. 이스라엘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2022년 9월 워싱턴 대사관 정치부에서 근무했다.
그를 가르쳤던 예루살렘 히브리대 학장 니심 오트마즈긴은 리신스키가 온화하고 근면하며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가교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는 이상주의자였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에서 그의 스승 중 한 명인 니심 오트마즈긴 교수는 리신스키 씨가 어린 시절부터 이스라엘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리신스키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히브리대에서 국제관계와 아시아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오트마즈긴 교수에 따르면 리신스키는 “그는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어 했다”고 오트마즈긴 교수는 말했다.
리신스키는 문화적, 종교적 분열을 해소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를 가르쳤던 교수는 “그는 유대-기독교적 가치를 구현했으며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간 대화와 문화간 이해를 옹호했다. 아브라함 협정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관계를 심화해야 한다는 열렬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테러로 억류된 사람들을 석방하기 위한 투쟁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포함되어 있다.
이-팔 화해를 옹호한 밀그림의 어이없는 죽음
캔자스주 오버랜드파크 출신의 밀그림은 평화를 증진하고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울 방법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데 자신의 경력을 바쳤다고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는 유대교와 이스라엘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했다”고 전 청소년 지도자 마샤 리트마스터는 말했다.
캔자스대에서 2021년 환경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유대인 생활을 위한 하바드 센터에서 열린 안식일 저녁 식사와 휴일 모임에서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그는 졸업 후 텔아비브의 한 단체에서 일했다. 이 단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위한 기술 교육과 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그는 갈등 해결을 장려하고 미국 의회가 설립한 단체인 미국 평화 연구소에서 종교 참여와 평화 구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2023년 아메리칸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일하게 됐다.
이스라엘 대사관에 부임해 대표단의 방문 및 사절단 파견 업무를 담당한 직후 리신스키를 만났다.
밀그림은 대사관에서 일하기 전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사이의 우정이 평화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 연구했다.
밀그림이 근무했던 ‘테크2 피스’는 기술을 통해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을 하나로 모으는 조직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밀그림은 다양한 환경 문제를 다루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물 부족과 같은 문제에 대한 협력을 촉진하는 행사를 조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딸이 이스라엘에서 젊은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연결하는 단체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2014년 캔자스주 오버랜드파크의 유대인 커뮤니티 센터와 인근 은퇴자 커뮤니티 밖에서 총격범이 총격을 가해 3명이 사망했다. 2017년 프레리 빌리지에 있는 밀그림의 공립 고등학교에 나치 문양 낙서가 발견됐다.
밀그림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지역 방송국 KSHB-TV에 “유대교 회당에 가는 것도 걱정인데 학교 안전까지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와 걱정이 자신이 무참하게 살해되는 비극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범죄 경력없는 로드리게스 ‘1급 살인’ 기소
시카고 거주자인 엘리아스 로드리게스(31)는 22일 1급 살인 및 기타 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시카고에서 대학 교육을 받은 젊은 직장인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다. 중산층이 사는 북쪽 지역의 아파트에 거주했고 근처에 친구와 가족이 있었다.
그는 좌익 정치에도 점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시카고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대기업,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일리노이 시카고대를 졸업했다. 2016년 가을부터 2018년 봄까지 재학했으며 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시카고 북서쪽,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지역 중 하나인 올버니 파크에 살았다.
100년 전에는 유럽에서 온 많은 유대인 가족들이 살았으나 이제는 라틴계, 백인, 아시아계 사람들이 섞여 있다.
로드리게스의 아버지 에릭은 노조원으로 올해 국제 서비스 직원 노조(SIE) 영상에 출연해 자신을 재향군인부 소속 연방 직원이자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라고 밝혔다.
로드리게스는 20대 동안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기사와 퀴즈를 게시하는 위키하우에서 작가로도 활동했다.
한 직업 소개서에는 그는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고, 라이브 음악과 영화를 보고,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2017년 그는 시카고 노스사이드에 있는 람 에마누엘 전 시장의 자택 밖에서 체크무늬 셔츠와 백팩을 착용하고 “아마존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위한 돈!”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됐다.
NYT가 로드리게스의 계정으로 확인한 소셜미디어 게시물에는 이스라엘과 미국 정부를 규탄하고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비난했다.
다만 시카고 경찰청의 래리 스넬링 경감은 로드리게스가 범죄 경력이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