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하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AI(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하면서, 그간의 재무구조가 흔들리고 사업 구조 전반의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모회사 알파벳, 아마존 등은 AI가 기술 지형과 글로벌 경제를 재편할 것이라는 확신 속에 지난 3년간 대규모 지출을 이어왔다. 기업 및 애널리스트 추정에 따르면, 이들 3개사는 2023년부터 올해까지 AI 관련 투자에만 약 6000억 달러를 투입했다.
그러나 투자 규모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현금 보유량이 감소하고 재무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이는 향후 투자 경쟁이 격화될 경우 사업 구조를 재정비해야 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마이크로소프트의 현금 및 단기 투자자산 비중은 총자산의 약 16%로, 2020년(43%)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알파벳과 아마존 역시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현금 비중이 빠르게 낮아졌다.
현금흐름도 악화하고 있다. 알파벳과 아마존은 올해 자유현금흐름이 지난해보다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4개 분기 자유현금흐름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회사가 공시한 자본지출에는 데이터센터·컴퓨팅 장비에 대한 장기 임대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를 반영하면 실제 현금흐름은 감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애널리스트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임대료 등을 포함해 약 1590억 달러를, 아마존이 1450억 달러, 알파벳이 1120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라면 빅테크 3사는 4년간 1조 달러를 투입하게 되며, 대부분이 AI 인프라 구축 비용이다.
현재의 매출 성장세로는 당장 투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AI 투자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부채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메타는 지난 10월 30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며 부채를 두 배로 늘렸고, 오라클도 오픈AI와 3000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계약을 체결한 직후 180억 달러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처럼 현금 감소·현금흐름 둔화·부채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빅테크 기존 사업 모델도 변화하고 있다. 초고성장 소프트웨어·클라우드 기업에서 벗어나, 대규모 자본지출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반도체 제조업와 유사한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는 데이터센터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투자금 회수 역시 수년에 걸쳐 이뤄진다. 수요가 충분하면 높은 수익성을 낼 수 있지만, AI 인프라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면 대규모 비용이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질 위험도 크다.
레이몬드 제임스의 기술 애널리스트 조시 벡은 앞으로 빅테크 평가 기준이 AI 사용자 수, AI 개발자 계약에서 발생할 미래 매출(RPO) 등 새로운 지표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기적으로 AI 투자 수익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자 시장의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주 아마존 주가는 약 5%, 구글은 2.5% 하락했다. 투자자들이 AI 붐에 대해 점차 신중한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WSJ은 “AI 시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 같은 고비용 투자 결정과 그에 따른 불확실성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