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7월 31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의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그 대가로 미국에 약 4,500억 달러(약 627조 원)에 달하는 전략산업 투자와 에너지 수입을 약속한 것으로 드러나 ‘바가지 협상’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번 협상은 미 동부시간 기준 8월 1일로 예정된 상호관세 발효 시한을 앞두고 타결됐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3,500억 달러 규모의 전략산업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했고, 여기에 더해 1,000억 달러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관세 인하를 ‘성과’로 포장했지만, 자동차 품목의 경우 기존 한미 FTA에서 무관세였던 것을 이제는 15% 관세를 부담하게 된 것으로, 실질적으론 ‘관세 후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구나 정부는 자동차 품목의 관세율을 12.5%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하한선인 15%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재명은 “주요국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에서 경쟁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자평했지만, 일본과 EU는 애초에 미국 시장에서 2.5%의 자동차 관세를 부담하고 있었던 만큼, 이들과 같은 조건을 얻으려면 12.5% 수준으로 관세를 낮췄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작 미국이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철강·알루미늄·구리에 대해선 기존 고율 관세(50%)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전략 자원’ 분야에서는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농축산물 시장 개방 역시 미국 측은 “완전 개방”을 선언했지만, 대통령실은 “쌀을 제외한 나머지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해 사실상 추가 개방 가능성을 남겨뒀다.
더 큰 문제는 투자 펀드 수익 배분에 관한 모호한 설명이다. 트럼프 측은 3,500억 달러 펀드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실은 “비망록으로 정리했으나 공개는 어렵다”며 명확한 반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조차 “90%와 10%는 일본식 표현을 인용한 것 같다”며 “그런 정도의 딜은 아니다”라고 애매한 해명을 내놨다. 이처럼 투자의 실질적 수익이 미국으로 귀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상호이익’으로 포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협상 직후 페이스북에 “큰 고비를 넘겼다”며 “세계 최대 시장과의 첫 통상 과제를 국익 최우선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미국에 거액의 투자와 에너지 구매를 약속하면서도 실익은 불분명하다”며 “이재명 정부가 트럼프의 정치적 퍼포먼스에 이용당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명분 없는 통큰 양보, 비공개 투자 수익 구조, 후퇴한 관세 협상 결과. 이 모든 것들이 맞물리며 이번 협상은 ‘굴욕적 외교’, ‘4500억 달러 바가지 외교’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