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리를 인정한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 전복에 가까운 대법원의 의견서 초안이 유출되며 미국 전역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백악관 홈페이지 성명을 통해 “우리 행정부는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수호하기 위해 법정에서 강력하게 언쟁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여성의 선택권은 근본적이고, 로 대 웨이드는 거의 50년간 이 땅의 모든 법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현재 로 대 웨이드 판례가 처한 위기를 두고 “기본적인 공정과 우리 법의 안정성은 이를 뒤집지 말라고 요구한다”라고 했다. 또 자국 내 각 주의 반(反)임신중절 법안 제정 움직임을 거론, “임신중절·생산권을 향한 계속되는 공격에 대응할 선택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울러 “만약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를 뒤집는다면, 여성의 선택권을 보호하는 일은 우리 국가 모든 급의 선출직 공무원에게 달릴 것”이라고 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과 임신중절권을 수호하려면 11월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 급에서 우리는 로 대 웨이드를 성문화하는 법안을 채택하기 위해 더 많은 선택 친화적 상원의원과 선택 친화적 하원 다수당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런 법안 통과와 서명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같은 성명을 냈다. 그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의 공동 성명에서 “대법원은 여성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에게 50년래 가장 큰 권리 제약을 가하려 한다”라며 “로 대 웨이드를 뒤집으려는 공화당 임명 판사의 표결은 혐오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또 이번 의견서를 “현대 역사에서 최악의, 가장 해로운 결정”이라고 했다. 그는 대법원 보수 성향 판사들을 향해서는 “미국 상원에 거짓을 말하고 헌법을 찢어발겼으며, 선례와 대법원의 평판을 모두 더럽혔다”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또 “링컨과 아이젠하워의 당은 이제 완전히 트럼프의 당으로 넘어갔다”라며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를 거론, “이런 날이 오지 않는 척 매코널을 지지하고 트럼프가 지명한 법관에 찬성 투표한 모든 공화당 상원의원이 이제 미국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라고 했다.
시민단체와 대중 사이에서도 파장이 만만찮다. CNN에 따르면 가족계획연맹은 대법원 의견서 초안이 보도된 후 “소름 끼치고 전례가 없다”라는 성명을 배포했다. 이들은 의견서를 두고 “대법원이 헌법상 임신중절 권리를 끝낼 준비가 됐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라고 했다.
가족계획연맹은 성명에서 “우리는 수십 년간 불길한 조짐을 봐 왔지만, 이는(의견서는) 엄청나게 충격적”이라며 “임신중절권 반대 단체가 전국적으로 임신중절을 금지하려는 궁극적인 계획을 공개한 직후에 나타났다”라고 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대법원이 유출된 초안의 노선을 따라 정말로 주류 의견을 낸다면 임신중절 권리의 토대는 대법원이 낸 어떤 의견서보다도 중대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며 “이는 국가의 절반에게서 본질적인 헌법적 권리를 국가 절반으로부터 박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임신중절 지지 및 반대 단체들은 대법원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로 대 웨이드 판결 존속을 두고 위기감이 제기됐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이어 보수 성향 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대법원 구도가 보수 우위로 바뀐 상황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 전복이 시도되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앞서 폴리티코는 전날 미국 내 임신중절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과 관련한 대법원 의견서 초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98쪽에 달하는 해당 의견서를 작성한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두고 “시작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라고 지적했다.
의견서에는 임신중절이 수정 직후 배아와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두고 미국 국민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심오한 문제라는 점이 언급됐다. 그러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해로운 결과를 불러왔으며, 임신중절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게 얼리토 대법관의 의견이다.
이번 대법원 의견서 초안은 임신 15주 이후 대부분의 임신중절을 금지하려는 미시시피주 주법과 관련해 나온 것이다. 지난 2월10일 대법관 사이에서 회람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6월 말~7월 초순에 실제 결정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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