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까지만 해도 ‘이제 베트남에서 생산하겠다’고 말했겠지만, 오늘은 확신이 없네요.”
롤러코스터처럼 오락가락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정책이 법원의 제동으로 전환점을 맞자, 미국 기업들이 혼란에 빠졌다.
정책 자체도 방향성 없이 흔들리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단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집행 정지’가 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시즌 단위로 주문을 계획하는 산업일수록 타격은 더욱 크다.
29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의류 브랜드 와일드팽을 운영하는 에마 맥일로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여파로 생산 거점을 중국 밖으로 옮기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관세 조치가 ‘불법’이라는 판결 이후 다시 고민에 빠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다음 선적이 8월에 도착할 텐데, 그때까지 관세가 사라질지 아닐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며 “실시간으로 경영을 배우고 있는 느낌이다. 베트남으로 생산 거점을 옮겨야 할지 이제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일 부과한 상호 관세 조치를 위법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도입한 상호 관세는 물론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관세도 10일 이내 취소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1심 판단에 반발해 항소했고,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는 무효라는 원심 판결을 일시 중단키로 결정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 효력은 계속 유지된다.
“관세는 끝나지 않았다”…美 기업들, 생산이동·가격인상 전략 유지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휘두른 무역정책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안도했지만, 일각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한 사례를 떠올리며 다른 법적 근거를 들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대법원이 송환 중단 명령을 내렸음에도 한 이민자를 엘살바로르로 보낸 전례가 있다.
중국에서 램프와 알람시계를 생산하는 로프티의 최고경영자(CEO) 매트 해셋은 “행정부가 법원 판단을 무시하고 다른 법 조항을 근거로 다시 관세를 부과할 수도 있다고 본다”며 “우리 제품에 최대 70%의 관세가 적용될 것으로 보고, 중국 이외의 지역으로 생산을 이전할 계획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생산기지를 옮기고,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등 트럼프발 관세 정책에 적극 대응해 온 기업들은 이번 법원의 판결과 무관하게 이미 실행 중인 계획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화장품 브랜드 ELF 뷰티는 8월부터 제품 가격을 1달러 인상한다. 이는 21년 만에 세 번째 인상이자 4월 도착한 제품에 최대 170%의 관세가 부과된 데 따른 조치다. 다만 관세가 철회되면 가격 인상도 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전자제품 유통업체 베스트바이는 일부 제품에서 관세 부담을 가격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현재 베스트바이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 약 33%가 중국산으로, 3월(55%)보다 비중이 크게 줄었다. 베스트바이의 CEO 코리 배리는 “전날 뉴스로 우리가 전략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 체인 콜스는 관세율이 높은 국가를 피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콜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질 팀은 “관세가 중단된다면, 가격에 민감한 중산층 고객에게는 긍정적인 소식”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우리의 계획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은 단순히 세금 부담을 키웠을 뿐 아니라 미국 기업과의 거래 나아가 미국과의 무역에 신뢰를 깨뜨렸다는 데 더욱 큰 타격을 줬다.
건축 자재를 제조하는 일리노이와 마이애미 소재의 트림텍스는 매출의 20%가 수출에서 나오는데, 올해 1분기 회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 하락했다.
트림텍스의 CFO 매트 토치은 “미국은 신뢰할 수 있는 무역 파트너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 이번 판결이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