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알래스카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무기한 전쟁 지속을 허용했다고 미국 언론이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휴전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대신 우크라이나의 영토 포기를 요구하는 더 광범위한 평화협정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선호에 굴복했다”며 “푸틴 대통령은 추가 제재 없이 전쟁을 무기한으로 계속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보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14일 러시아에 ’50일 내 휴전 불응시 최대 100%의 세컨더리(제재 대상국과 관련된 제3국 대상 제재) 관세 부과’를 공언하며 압박했고, 28일에는 시한을 ’10~12일’로 단축하며 즉각 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15일 성사된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의 결론은 ‘휴전’이 아닌 ‘평화협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트루스소셜에 “끔찍한 전쟁을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종종 유지되지 않는 단순한 휴전 협정이 아니라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정으로 직행하는 것이라는 게 모두의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회담 직전 이뤄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휴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쁘지 않을 것”이라며 “모두가 휴전이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또다시 입장을 바꿨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50일 내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이제 휴전도, 시한도, 제재도 없다”고 지적했다.
CNN도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보다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평화협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러시아 입장을 채택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에게 크게 양보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에 전쟁 자금을 대는 국가에 대한 세컨더리 제재 위협을 철회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는 포괄적인 평화협정만 허용할 수 있다는 크렘린 주장에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푸틴은 지금까지 이를 내세워 휴전 노력을 지연시켰으며, 많은 의문과 세부사항 등을 협상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보 달더 전 주(駐)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미국대사는 “휴전, 강력한 경제 제재에 대한 온갖 약속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트럼프를 또 속이는 데는 레드카펫에서 2분, 비스트(미국 대통령 전용차량)에서 10분이 걸렸다”고 비판했다.
반면 러시아 전 대통령이자 푸틴 대통령 핵심 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위원회 부의장은 “이번 회담은 전제 조건 없이, ‘특수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면서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러시아와 미국의 최고위급 회담이 최후통첩이나 위협 없이 평온하게 회복됐다”고 극찬했다.
‘휴전 없는 평화협정 논의’는 사실상 ‘전쟁 지속 프리패스’를 의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푸틴 대통령의 요구 조건에 동의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전쟁이 기약 없이 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15일 “우크라이나 합의가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이뤄지려면 이미 반복적으로 논의된 ‘위기의 근본 원인’이 모두 제거돼야 하고 러시아의 모든 합법적인 우려가 고려돼야 하며, 유럽과 전세계 안보에서 ‘공정한 균형’이 회복돼야 한다고 확신한다”며 입장을 구체적으로 재확인했다.
NYT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근본 원인 제거’란 나토가 1997년 이전 경계선으로 병력을 물리고, 우크라이나 가입을 금지하며 우크라이나가 동부 영토를 포기하고 군사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미다. 동유럽 전역에 대한 소련 시기의 영향력을 재건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나토 주요국과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군사력에는 어떤 제한도 있을 수 없으며, 나토·EU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 주장에 대한 러시아 거부권도 있을 수 없고, 우크라이나 영토는 우크라이나가 결정한다”며 이를 일축하고 있다.
다만 외신은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없이 ‘영토 교환(land swap)’을 구체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다는 점, 그리고 미국이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참여할 뜻을 밝힌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CNN은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키이우를 팔아넘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적어도 잠시간의 안도감을 느꼈다”며 “미-러간의 영토 교환이 알래스카에서 이뤄지지 않은 것은 유럽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봤다.
WP는 “유럽 지도자들에게 한 가지 희망적 소식은 어떤 합의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에 미국의 지속적 지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