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타운 대형회계사무실에서 근무하는 H씨는 최근에서야 스포츠에 눈을 뜨게 됐다.
스포츠에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먹고살기 바빠, 한인 선수들 류현진이 다저스에서나 (지금은 토론토에서 뛰고 있다) 뛴다는 것만 알 뿐, 아이들과 스포츠 얘기에서도 항상 뒷전이었다.
그런데 요새 기분이 좋다고 한다.
H씨는 어느날 사무실 동료가 “오늘 너희와 우리가 올림픽에서 야구한다. 너는 어디를 응원할 것이냐?”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난데없이 무슨말인가? 의아해 하자 동료는 “내일 새벽 한국과 미국이 도쿄 올림픽에서 경기를 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2-4로 패했다)
다음날 동료는 미국이 힘겹게 이겼다며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을 높이 평가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내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올림픽 기사를 찾아보고, 남편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묻다보니 지금 도쿄올림픽이 중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개막식 이야기는 들었는데 관심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4일 사무실에서 또 한번의 이야기 꽃이, 올림픽 이야기 꽃이 피었다.
동료는 역시 올림픽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야구 준결승에서 일본이 이겨 한국과 미국이 결승전 진출을 놓고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한다고 말하고(새벽에 경기 보느라 피곤하다고도 했다. 한국 대표팀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2-7로 패해 도미니카 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을 치르게 됐다), 한국 여자배구의 인기가 오르고 있는데 결승에 오르면 미국과 맞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까지 스스로 분석해 이야기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철저한 미국인 동료가 올림픽 내내 한국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국 야구대표팀과, 여자 야구 대표팀, 그리고 양궁까지,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그런데 얘기할 때 마다 한국을 거론하니 H씨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매번 올림픽이 끝나면 그 때만 반짝하는 스타들과, 반짝하는 종목들.
올림픽만 하면 한인 친구들은 무조건 한일전만 관심을 갖고 있는데 직장 동료들은 하나하나 다 관심을 갖고 있었고, 구기 종목에는 반드시 한국 이야기가 따라 나왔다.
H씨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너무 관심 없이 살았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올림픽을 볼 여유조차 없이 살았나 싶기도 하고, 나보다 한국에 대해 더 잘 하는 동료들에게 부끄러운 감정이 들기까지했다.
4년에 한 번 치러지는 올림픽, 아무런 관심도 없던 H씨는 어제 공부한 여자 골프 이야기를 했다. 올림픽 여자 골프가 시작됐고, 그래서 한국의 금메달 가능성이 또 있다고 설명했다. 박인비, 고진영 선수를 설명하며…
H씨는 그러고 자리에 돌아와 괜스레 눈가가 촉촉해 졌다고 한다. 아무런 이유도 모르겠고, 그냥 한국, 한국, 우리 한국 이야기 하면서 그렇게 눈가가 촉촉해 졌다고 한다.
2020 도쿄 올림픽은 역사상 처음으로 홀수 해에 치러지고, 무관중 경기여서 역대 어느 올림픽보다 관심과 호응이 적다. 그래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여느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최선의 경기를 펼치고 있다. 한국 선수들도 최종 목표인 금메달 7개, 종합 10위 안의 목표를 위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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