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청년 문화의 원형을 만든 인물이자 국내 포크계의 대부로 통하는 김민기(73) 전 학전 대표가 별세했다. 향년 73.
22일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등 가요계에 따르면, 김민기는 암투병 끝에 전날 별세했다.
적어도 40대 이후 세대에게 김민기 대표는 아련함의 대상이다. 그는 1970~1980년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다. 어두운 시절에 그가 의도해서가 아닌, 세상의 운명에 따라 상징적인 노래가 된 ‘아침이슬’ ‘상록수’로 기억되는 ‘포크계 대부’다.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았다’는 종심(從心·70세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을 막 넘긴 김 대표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로 올라온 그는 재동국민학교와 경기중·고를 거쳤다. 경기중·고 시절 미술반 활동을 했고, 1969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수업이 잘 맞지 않았던 그는 낙제를 하게 된다.
이후 1970년 김 대표에겐 족쇄와도 같은 ‘아침 이슬’을 내놓았다. 초창기엔 건전가요로 지정됐다. 널리 장려되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1972년 ’10월 유신’이 있고 금지곡이 됐다. 불온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1년 전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던 곡이었다.
김 대표가 1971년 내놓은 독집 음반은 전량 압수됐다. 이후 김 대표는 방송금지는 물론 연행의 길을 걸었다. ‘친구’ ‘아름다운 사람’ ‘가을 편지’ ‘봉우리’ 등의 노래는 세상이 김 대표에게 빚진 노래다.
특히 그가 1978년 발표한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1970년대 노동자의 삶을 다룬 ‘노래극’으로 당시 노동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자신이 투사로 불리는 것에 넌더리를 낸다. 정작 싸워본 적이 없다며 몸을 낮춘다.
자신의 목소리를 음반으로 남기는 것도 마뜩치 않아했다. 하지만 이전 곡들을 모아 1993년 네장의 앨범으로 된 ‘김민기 전집’을 발매했다. 이 음반 계약의 선불금을 받아 1991년 학전을 개관했다. 그는 믹싱룸에 들어갈 때,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각종 어려움을 뚫고 연 학전은 공연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숨통이 됐다. 김 대표는 우리 문화예술계에 대한 공을 인정 받아 2020년 호암재단이 수여하는 ‘제30회 호암상 수상자’ 예술상을 받았다. 하지만 학전은 일종의 장례식이었던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끝으로 개관 33주년 당일인 지난 3월15일 폐관했다.
조문은 이날 오후 12시30분부터 가능하다. 조의금과 조화는 고인의 뜻에 따라 받지 않는다.
빈소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2,3호실), 발인 24일 오전 8시, 장지 천안 공원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