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과 18일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 폭발한 호출기(삐삐)와 무전기(워키토키)는 이집트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제품을 디자인하고 이스라엘 내에서 조립된 뒤 헤즈볼라에 판매됐다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5일 보도했다.
헤즈볼라 대원 등 최소 37명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한 삐삐와 워키토키 폭발은 헤즈볼라에 대한 대대적인 지도부 폭격 살해 및 지상전 공격의 서막이 됐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보안기관 관리 뿐 아니라 레바논과 헤즈볼라와 가까운 사람 등에 대한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모사드의 9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 끝에 실행하게 된 과정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WP는 스파이 활동의 최근 역사에서 정보 기관이 적에 침투한 가장 성공적이고 창의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에 감청되지 않는 통신기기를 찾고 있을 때 헤즈볼라에 호출기를 공급한 중국계 여성은 모사드의 공작 사실도 몰랐다.
헤즈볼라 2월 5000대 호출기 구매 대원들에 공급
2년 전 ‘AR 924’ 호출기(삐삐)가 헤즈볼라에 처음 판매될 때 헤즈볼라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에 정확히 맞다고 만족해했다. 부피는 크지만 충전 없이 몇 달 동안 작동하는 대형 배터리 때문이다.
대만 디자인으로 모사드에 추적될 위험도 전혀 없다고 봤다. 헤즈볼라 지도자들은 5000개를 구입해 올해 2월 중급 전투원과 지원 인력에게도 나눠줬다.
누구도 이스라엘에서 정교하게 만든 폭탄을 착용하고 있다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헤즈볼라 대원들은 작은 폭탄을 이스라엘에 간접적으로 돈을 지불하고 착용하고 다녔다.
WP는 호출기의 ‘더 사악한 기능’은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기 위해 사용자가 두 손으로 버튼을 누르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사용자가 사망하지 않아도 두 손을 잃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9년간 무전기에 도청 장치 심어
호출기 작전에 대한 아이디어는 2022년 시작됐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7일 테러 공격을 하기 1년 이상 전이다.
이스라엘은 ‘저항의 축’ 중 헤즈볼라가 수만 개 정밀 유도 미사일가 갖출 정도로 무장하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모사드는 수년간 전자 감시와 인간 정보원을 이 단체에 침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모사드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감청과 해킹에 취약한 것을 우려해 일반 휴대전화조차도 도청 및 추적 장치로 바뀔 수 있다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상황이 모사드에게는 ‘통신 트로이 목마’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탄생하게 했다.
부비트랩이 장착된 워키토키는 모사드가 2015년 레바논에 처음 공급했다. 무전기에는 대형 배터리 팩, 숨겨진 폭발물, 통신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 등이 포함됐다.
이스라엘은 9년 동안 도청에 만족했으나 필요시 폭탄으로 바꿀 수 있는 옵션을 남겨두었다.
작고 강력한 폭발 가능한 삐삐 등장
그러다 크기는 작고 강력한 폭발이 가능한 삐삐라는 화려한 신제품이 등장했다. 헤즈볼라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호출기는 이스라엘, 미국 등과는 관련이 없어야 했다.
헤즈볼라는 지난해 대만 브랜드의 ‘아폴로 호출기’ 대량 구매 권유를 받았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이스라엘이나 유대인과 연관성이 없는 대만 회사 상표와 제품이었다.
WP는 신원과 국적을 공개하지 않은 호출기 마케팅 담당자는 대만 회사의 전 중동 영업 담당자였다.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고 해당 브랜드 제품 판매 라이선스가 있었다.
그는 AR 924 호출기가 케이블 충전이 가능하고 배터리가 오래 지속된다는 등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 여성은 그러나 자신이 헤즈볼라에 판매되는 제품은 모사드 감독 하에 이스라엘에서 조립된다는 것을 몰랐다.
무게가 3온스(약 84g)가 안되는 이 호출기에는 강력한 폭발물이 숨겨져 있었다. 헤즈볼라가 일부 호출기를 분해해 X선 촬영을 했을 수도 있지만 폭발물이나 전자 신호로 폭발한다는 것은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모사드는 보고 있다.
이 폭발물은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기 위해 두 개의 버턴을 두 손으로 누르면 터진다.
지난달 17일 충성스런 대원들은 아랍어로 “암호화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받고 두 손으로 버튼을 눌러 보려다 폭발 피해를 입게 됐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사용자가 기기를 만졌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수천 개의 다른 페이저가 원격 명령으로 폭발했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나스랄라 행적도 수년간 알아
이스라엘의 대부분 고위 선출 공무원들은 9월 12일 모사드로부터 설명을 듣기까지 몰랐다고 WP는 전했다.
이스라엘 정보 당국자들은 남부 레바논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폭발물이 발각될 위험이 커지는 것을 우려했다. 수년간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호출기 등의 동시 폭발로 대규모 보복 공격을 당하는 등 사태가 악화될 우려 등으로 폭발을 실행할 지를 두고 내부적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작동을 승인했다.
미국도 폭발물이 장착된 호출기나 이를 작동시킬지 여부를 놓고 내부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모사드는 수년 동안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행방을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은 가자 지구 휴전을 먼저 요구하면서 휴전을 거부하는 나스랄라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나스랄라는 지난달 27일 벙커버스터 투하로 지하 18m의 헤즈볼라 본부에 은신해 있다가 폭탄 폭발의 충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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