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LA에서 벌어진 대규모 이민 단속과 그에 대한 지역사회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LA를 대표하는 주요 프로 스포츠팀 중 일부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다문화 도시이자 1,000만 명 이상의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일부 스포츠팀들은 “다양성이 도시의 힘”이라며 이민자 커뮤니티와의 연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추방 정책에 따라 지난주부터 LA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집중 단속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다운타운 LA 연방청사 주변 등에서 시민들의 격렬한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 연방 정부는 해병대 및 주 방위군까지 LA에 배치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팀은 여성 프로축구팀 엔젤 시티 FC였다.
팀은 6월 7일 X(구 트위터)를 통해 “LA 커뮤니티 내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불확실성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는 소속감을 믿는다. LA는 그 다양성과, 이 도시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더 강해진다”고 밝혔다.
같은 날, LA 남부 파라마운트 지역 홈디포 매장 근처에서 이민 단속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퍼지며 시위가 일어난 직후였다. 이튿날에는 연방 요원들이 다운타운 LA 인근에서 추가 체포 작전을 벌였다.
이날 경기에 출전한 엔젤 시티 선수단은 앞면에 “Immigrant City Football Club”, 뒷면에는 “Los Angeles is for everyone(로스앤젤레스는 모두의 것)”과 “Los Angeles es para todos”가 새겨진 검은색 티셔츠를 착용했다.
해당 티셔츠는 팬들에게 배포되었고, 구단 공식 온라인 샵에서도 판매 중이며, 수익금은 Camino Immigration Services에 전액 기부된다.
LAFC도 6월 8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 커뮤니티의 진정한 힘은 이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에서 비롯된다”며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지금, LAFC는 모든 커뮤니티 구성원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BMO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포팅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는 팬들이 “나는 지금 노래할 수 없다, 아무 일도 없는 척할 수 없다. 모든 것이 괜찮지 않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열성 응원단체 ‘The 3252’는 전반 내내 응원을 멈춘 채 침묵을 유지하다, 후반 추가 시간에야 목소리를 냈다. 경기는 3-1 LAFC 승리로 마무리됐다.
LA 다저스 구단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팀의 인기 선수 키케 에르난데스는 6월 9일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려 개인적인 심경을 밝혔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그는 “비록 이곳 출신은 아니지만, LA는 나를 가족처럼 받아주었다”며 “이민 단속으로 인해 우리 커뮤니티가 파괴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전했다.
그는 “LA와 다저스 팬들은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이곳은 나의 제2의 고향이다. 모든 사람은 존중과 존엄, 인권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도 지난 6월 13일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잠시 이 문제를 언급하며 “강제 추방과 지역사회의 혼란은 모두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다저스를 비롯해 LA 에인절스, 스팍스(WNBA), 레이커스, 클리퍼스, 킹스, 덕스, 갤럭시, 램스, 차저스 등 LA를 연고로 하는 12개 주요 프로팀 가운데 공식 입장을 밝힌 팀은 엔젤 시티 FC와 LAFC뿐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약 1,060만 명의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약 180만 명이 서류미비자다. LA 카운티 인구 약 960만 명 중 350만 명이 이민자이며, 이 중 약 80만 9,000명이 서류미비자로 추정된다.
스포츠 구단의 이 같은 공식 입장을 SNS 등을 통해 밝히지 않자 NBC 방송국이 현재 각 구단마다 접촉해 ‘이민단속에 대해 할 말이 없느냐?” 라는 식의 반응이나 성명을 요구하고 있다.
프로 스포츠 팀들은 2016년 8월을 기억하고 있다.
NFL 팀인 샌프란시스코 49ers의 콜린 캐퍼닉이 그린베이와의 경기에서 국가 연주 때 팀 인종차별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무릎을 꿇었다. 선수들이 따라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캐퍼닉을 지지하면서도 행동으로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 당시가 바로 트럼프 행정부 1기였다.
캐퍼닉은 트럼프 대통령의 집중 포화를 받았고, 심지어 한국에서는 욕받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로 집중 포화를 받았다.
이후 캐퍼닉은 NFL에서 사라졌다. NFL 사무국과 합의하고 다른 팀과의 계약을 노려봤지만 괜히 경기력이 아닌, 성적이 아닌, 다른 문제로 주목받고 싶지 않은 팀들이 캐퍼닉 영입을 꺼렸고, 그렇게 캐퍼닉은 사라졌다.
당시 주전 쿼터백을 잃고도 하소연 한 마디 하지 않았던 샌프란시스코 였다.
지금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괜히 주목받고 집중포화를 맞고 싶은 팀은 없다. LA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위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NBC는 각 팀에게 원하지 않는 성명을 요구한 셈이다.
프로 스포츠 구단은 말 한마디에 수십억 달러가 왔다 갔다 한다. 이를 희생할 팀은 아직 없다.
다저스는 키케와 1년 재계약을 맺었다. 다저스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선수들이 좋아하는 선수,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임은 틀립없다. 하지만 키케의 다저스 생활은 올해가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