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주장 때문에 ‘계란은 콜레스테롤 위험 식품’이라는 잘못된 이미지가 굳어졌다. 또 아이에게 세 살까지 땅콩을 먹이지 말라는 미국소아과학회의 지침은 미국을 세계에서 땅콩 알레르기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만들었다.
신간 ‘의사에게 죽지 않는 법'(웅진지식하우스)은 ‘전문가’라는 권위 아래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 절대적인 지침처럼 되어버리는 관행을 들추고, 환자와 의료계 모두가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하는 안내서다.
현 FDA 국장이자 존스홉킨스 의대 교수인 저자 마티 마카리는 땅콩 알레르기, 호르몬 대체요법, 항생제의 남용, 콜레스테롤에 대한 오해, 난소암의 기원 등 지난 수십 년 동안 의료계가 만들어낸 잘못된 통념이 어떻게 환자들의 몸과 삶을 뒤흔들었는지 탐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영·유아의 땅콩 섭취를 피하라는 오래된 권고안이다. 이 지침은 충분한 검증 없이 영국에서 시행된 권고안으로 출발했다.
많은 부모는 ‘의료 전문가들의 조언’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심 없이 따랐지만 그 조언은 오히려 알레르기 유병률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부모들은 “아이가 이렇게 된 게 고작 엉터리 문서 한 장 때문”이라며 분노했다. 당시 면역학계는 이미 조기 노출의 이점을 알고 있었지만, 관련 과학자들은 권고안을 만든 소규모 위원회에 포함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전문 분야가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 구조적 단절, 오래된 가설을 유지하려는 집단적 관성이 결국 국가적인 건강 위기를 만든 것이다.
“연구에 연구가 이어졌지만 식이 콜레스테롤과 심장질환 사이에서, 혹은 식단의 콜레스테롤 양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사이에서 연관성을 밝히는 데 거듭 실패했다. 오히려 강력한 과학 연구를 통해 냉혹한 현실이 드러났다. 식사를 통해 섭취한 콜레스테롤은 일반적으로 몸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식품에 든 콜레스테롤의 대부분에 부피가 큰 곁사슬 분자가 연결되어 있어서 흡수될 수 없기 때문이다.” (138쪽)
마카리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의료에 대한 비관이나 불신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의료의 진정한 회복은 전문가 권위가 아니라 ‘과학적 절차의 회복’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증거에 열린 마음으로 반응하는 태도, 기존의 믿음을 기꺼이 수정하려는 용기, 그리고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이야말로 현대 보건의료가 다시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한 토대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의학적 오류를 비난하기보다는 더 나은 질문을 던지며 의학이 더 투명한 근거 위에서 작동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생학자들은 가장 ‘바람직한’ 유형의 아이를 낳도록 장려했으며, 이들의 관행 중에는 반항기나 알코올중독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형질이 유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성과 여성에게 불임수술을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1907년, 인디애나주는 유전학 원리의 바탕 위에서 불임수술을 강제, 혹은 강요하는 정책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1931년에는 30개 주에서 그와 비슷한 법을 제정했다. 매년 수천 명의 여성이 불임시술을 받았고, 대부분은 가난한 유색인종이었다. (중략) 이것은 의학의 가부장적 문화에 뿌리를 둔 부끄러운 역사다.” (27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