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축구가 무너진 것은 월드컵 성적만이 아니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청문회에서는 감독 선임부터 협회장 선거, 심판 인사, 공약 불이행, 책임 회피까지 축구협회의 고질적인 운영 실태가 연이어 드러났다. 청문회는 한국 축구 행정이 구석구석 썩어 있었다는 사실을 국민 앞에 확인시킨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청문회는 단순히 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기 탈락 원인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었다. 증인들의 답변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돼 온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폐쇄적인 조직문화, 특정 인맥 중심의 운영 방식, 책임 회피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대한축구협회 전반에 대한 개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된 장면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발언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만약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했더라도 오늘 같은 청문회가 열렸겠느냐”고 묻자 정 회장은 “16강 이상 갔다면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발언은 축구협회 운영의 문제를 성적과 동일시하는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의원들은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월드컵 성적 때문이 아니라 협회의 불투명한 운영과 무너진 신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도 집중적인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의원들은 홍 감독 선임이 공개 경쟁이나 객관적인 평가보다 일부 인맥과 내부 의사결정에 의해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축구계를 지배해 온 특정 학연과 인맥 중심의 이른바 ‘카르텔’ 문화가 협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홍 감독은 법인카드 사용 논란에 대해 “모든 사용은 협회 규정과 한도 내에서 이뤄졌고 증빙과 정산도 완료됐다”고 해명했지만, 의원들은 공적 예산 사용이 국민 눈높이에 맞게 관리됐는지를 집중 추궁했다.

정 회장이 협회장 선거 당시 약속했던 50억 원 기부 공약을 아직 이행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의원들은 “공약조차 지키지 않는 협회가 어떻게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
청문회에서 특히 충격을 준 대목은 문진희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을 둘러싼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었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지난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당시 문 위원장이 공식 선거운동 자격이 없음에도 선거인 명단을 확보해 심판들을 접촉하고, 정몽규 후보를 위한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일부 심판들에게 승급과 경기 배정 등을 언급하며 지지를 요청했다는 녹취록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의원들은 선거운동 자격이 없는 인사가 특정 후보를 위해 선거인을 접촉한 것 자체가 사실이라면 선거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 위원장의 청문회 태도도 논란을 키웠다.
질의 과정에서 의원들과 언성을 높이며 설전을 벌였고, 심판 육성 실패를 지적하는 질문에는 “심판들이 욕을 많이 먹기 때문에 지원자가 줄었다”는 취지로 답변해 책임을 외부로 돌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 회장이 청문회 도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부적절한 태도 논란도 불거졌다. 국민 앞에서 책임 있는 해명보다 정치적 대응에 치중하는 모습으로 비쳤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 회장과 홍 감독은 모두발언에서 나란히 사과했다.
정 회장은 “재임 기간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노력했지만 부족했던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밝혔고, 홍 감독도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청문회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월드컵 실패가 아니었다.
감독 선임의 불투명성, 특정 인맥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 협회장 선거 개입 의혹, 공약 불이행, 심판 인사 논란, 법인카드 사용 논란, 책임 회피성 발언까지 축구협회의 운영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문제들은 한국 축구 행정의 구조적 병폐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한축구협회가 단순한 인적 쇄신을 넘어 조직 운영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 전반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이번 청문회에서 드러난 논란은 한국 축구의 또 다른 위기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K-News LA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