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중앙정보국(CIA) 등 전직 정보 당국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통치 방식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당시 자신의 권력을 제한했던 이른바 ‘딥 스테이트(deep state·비밀 권력 집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복귀했고, 재집권 이후 비판 세력의 입을 막고 주변 인사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해왔다고 FT는 지적했다.
옛소련과 발칸 지역에서 CIA 지국장을 지낸 폴 콜베는 “독재자들이 권력을 잡고 휘두르는 방식에는 공통된 수순이 있다”며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은 이러한 과거의 역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백악관으로부터 안보 기밀 접근권을 박탈당한 뒤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안보 전문 변호사 마크 자이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 집착이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견제 장치가 모두 제거됐다”며 “우리가 맞닥뜨릴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콜베는 미국 내 권위주의 확산에 대한 우려로 2016년 결성된 전직 정보·안보 당국자 네트워크 ‘스테디 스테이트(The Steady State)’의 회원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도와 행정부 권한에 대한 견제 장치를 약화시키면서 미국 민주주의와 기업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단체에는 4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2기 들어 회원이 크게 늘었지만 상당수는 보복을 우려해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창립자 스티븐 캐시는 “회원 절반은 공개적으로 활동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들은 전쟁 지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전직 CIA 분석관 줄리아 컬리는 “말을 아껴야 할 이유는 많지만 모두가 침묵한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며 “국민들은 이 중요한 기관들이 얼마나 무력화되고 약화했는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대만 담당 CIA 분석관 출신 게일 헬트는 ‘개인 숭배’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헬트는 “트럼프 대통령은 여권과 지폐에 자신의 얼굴을 넣고 싶어 한다”며 “마오쩌둥조차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넣지는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전문가 단체인 초당파 연구기관 ‘비상사태연구소’는 당국자들이 비상 권한을 악용해 선거를 방해할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이러한 우려는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TV 생중계 연설에서 중국이 2020년 미 대선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면서 더욱 증폭됐다. 2021년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중국 정부가 미국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그의 행정부가 기밀 해제한 정보에 근거했지만, 전직 정보 당국자들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선거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품게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했다.
커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보 기관 자체의 판단에 반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CIA를 이용하고 있다”며 “지난 수십 년간 정보기관의 역량과 권한을 이처럼 악용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맹비난했다.
전직 당국자들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민간 부문 인사들이 국가안보 기관과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보안인가 권한을 비판자들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첫날 2020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노트북에서 나온 이메일 공개가 러시아 정보기관의 작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는 내용의 서한에 서명한 전직 정보 당국자 50명의 보안인가를 취소했다. 이후 바이든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과 다른 주요 비판자들의 보안인가도 박탈했다.
자이드 변호사는 비판자들에 대한 보안인가 제한은 공산주의 동조 의심자를 표적으로 삼았던 1950년대 ‘매카시즘’ 이후 본 적이 없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 국민에 대한 바이든 정부의 권력 남용을 바로잡고, 미 정계의 기득권을 청산하며, 미국인을 우선하라는 국민의 위임을 받아 당선됐다”며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의 손에서 권력을 회수해 국민에게 돌려줌으로써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전직 당국자들은 미국의 제도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견뎌낼 것으로 봤다. 헬트는 “우려해야 할 사안의 목록은 길다”면서도 “미국인들에게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우리는 그 차가운 어둠 속으로 순순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K-News LA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