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간 암투병 끝에 74세를 일기로 8일(현지시간) 별세한 영국 가수 겸 배우 올리비아 뉴턴 존은 1970~80년대 ‘만인의 연인’으로 통한 슈퍼스타다.
마돈나, 휘트니 휴스턴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표적인 여성 팝 가수로 이름을 떨쳤다. 1970년대 팝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린다 론스타드, 데비 분, 보니 타일러 같은 여성 가수들을 제치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뉴턴 존은 1948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뉴턴 존 가(家)의 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모친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막스 보른의 딸이었다. 웨일스 태생의 부친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MI5 정보 장교였다. 이후 남자 고등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뉴턴 존이 여섯살이 됐을 때 그녀의 가족은 아버지가 대학교수와 행정가로 일했던 호주 멜버른으로 이민갔다.
뉴턴 존의 팬이라도 그녀의 출신국이 영국인지, 호주인지 헷갈리는 이들이 많다. 그녀는 생전 “나는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영국을 좋아한다”면서도 “아주 어렸을 때 호주로 이민을 왔다. 호주는 내 마음의 고향(heart home)이다.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을 호주에서 보냈고, 나는 스스로 호주 여자(Aussie girl!)라고 여긴다”고 정리해줬다.
뉴턴 존은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끼를 뽐냈다. 열네 살 때 세 명의 소녀들과 함께 자신의 첫 번째 그룹 ‘솔 포(Sol Four)’를 결성했다. 화려한 외모의 그녀는 바로 주목 받았고, 라디오와 TV 쇼에서 단독 공연했다.
이후 경연 프로그램과 유럽 공연 등을 소화했고, 1970년엔 스페이스 뮤지컬 영화를 표방하는 ‘투모로우’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다.
1971년 ‘포크 록의 대부’ 밥 딜런의 원곡 ‘이프 낫 포 유(If not for you)’로 솔로로 정식 데뷔하면서 단숨에 ‘컨트리계의 샛별’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컨트리 마니아들은 처음엔 뉴턴 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컨트리는 미국인의 전유물로 통하는데, 그녀가 호주에서 자란 영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턴 존의 음색은 당시 컨트리 주류 색깔과 달리 청아했다.
하지만 뉴턴 존은 1973년 발표한 ‘렛 미 비 데어(Let Me Be There)’로 ‘그래미 어워즈’ 최고 여성 컨트리 보컬 퍼포먼스를 받으면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소프트 록의 부상 등이 맞물려 컨트리계에도 변화가 생긴 결과였다.
1974년엔 ‘컨트리 여왕’ 돌리 파튼 같은 정통적인 컨트리 스타들을 제치고 ‘컨트리 음악 협회’ 올해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금발의 깨끗한 미모로 인해, 한편에서는 여전히 도리스 데이, 샌드라 디 같은 초기 금발 가수들과 비교됐다.
1978년 존 트라볼타와 주연을 맡은 뮤지컬 영화 ‘그리스’로 연기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주인공 ‘샌디’를 맡아 기존의 청순함을 버리고, 몸에 착 달라붙은 검정 가죽 재킷과 바지를 입었다. 음악 역시 컨트리에서 벗어나 디스코, 팝 록 등을 소화했다. 뉴턴 존과 트라볼타가 함께 부른 팝 록 ‘유어 더 원 댓 아이 원트(You’re the one that I want)’는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뮤지컬 영화를 대표하는 곡은 ‘서머 나이츠(Summer nights)’. 청춘 영화 ‘비트’의 정우성·고소영 콤비가 2000년대 초반에 출연한 옷 브랜드 광고 음악에 삽입되면서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영화의 원작인 뮤지컬 역시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수차례 공연하며 청춘 스타들을 배출했다.
‘그리스’로 다시 인기를 확인한 뉴턴 존은 ‘그리스’ 개봉과 같은 발매한 솔로 음반 ‘토탈리 핫(Totally Hot)’에서도 디스코와 팝 록 사운드를 이어갔다. 1980년엔 ‘그리스’ 공식을 빼닮은 SF 판타지 뮤지컬 영화 ‘제너두’에 출연했다. 영국 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와 함께 뉴웨이브 장르의 OST를 담당했다.
1981년엔 육감적인 뮤직비디오를 앞세운 ‘피지컬(Physical)’로 당대를 풍미했다. 이 곡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서 10주간 1위라는 당시로는 이례적인 기록을 거뒀다. 일부에서 선정성을 지적하기도 했지만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이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비디오’ 부문을 수상했다. 뉴턴 존은 생애 총 4개의 그래미 어워즈를 받았다.
1992년 유방암에 걸린 이후 뉴턴 존은 유방암 연구의 중요한 후원자가 됐다. 호주 멜버른에 ‘올리비아 뉴턴 존 암 웰니스 & 리서치 센터'(ONJCWRC)를 건립하고 연구기금을 조성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이 식물 기반 치료법을 연구하는 데도 일조했다. 자신도 평생 암과 싸웠다. 2013년 어깨로 암이 전이됐다. 2017년 5월 암이 재발, 허리 아래까지 전이됐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애썼다. 2006년 UN환경민간대사로 활동을 펼치는 등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훈장을 받을 정도로 사회적으로도 공헌을 했다. 2018년엔 회고록 ‘돈트 스톱 빌리브인(Don’t Stop Believin)’을 출간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뉴턴 존은 음악에 대한 대중 친화적인 접근을 끝까지 굳게 믿었다. 그녀는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 잡지 롤링스톤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상업적인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완전히 반대예요.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2000년과 2016년 두 번 내한했다. 2016년 5월14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펼쳐진 단독 콘서트에서 뉴턴 존은 마치 ‘그리스’의 ‘샌디’가 돌아온 듯 공연했다. 특히 앙코르곡으로 영화 ‘오즈의 마법사’ 수록곡인 주디 갈랜드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들려줬는데, 이 곡의 온화한 낙천적인 분위기는 일흔이 다된 나이에도 생기와 열정을 잃지 않는 뉴턴 존에게 오롯하게 가닿았다.
당시 내한 전 뉴턴 존은 뉴시스를 포함 국내 언론과 서면 인터뷰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스스로 네 자신이 돼라(be yourself).” 그러면서 더 강조한 부분이 있다. “다만 자신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유머 감각을 가지고 항상 웃어야 해요. 행복해야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