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몇 달 앞둔 2001년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68세 생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역사서 ‘속일본기 (續日本紀)’를 인용해 ‘50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간무 천황의 생모는 누구며 백제 25대 무령왕과 어떤 관계일까? ‘속일본기’는 이렇게 전한다. ‘황태후의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 태자다.’ ‘백제의 먼 조상인 도모왕 이라는 사람의 후손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황태후의 성은 화(和)씨라고 말하고 있다. 헌데 31대 요메이(用明) 천황과 그의 아들인 쇼토쿠 태자의 성 또한 화(和)씨로 백제 무령왕의 성과 같다.
그래서 그런지, 쇼토쿠 태자는 백제와 신라의 영향력에 힘입어 한국과 중국의 제도, 문물 등을 수입하여 국내의 제반 체제를 혁신하고 아스카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후 천황가계는 백제계가 주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본은 천황 가계가 한 핏줄로 이어진 것처럼 조작해 왔다.
아무튼 쇼토쿠 태자는 당시17조 헌법의 첫머리를 ‘화(和)로써 귀하게 여기며…’로 시작할 만큼 화를 중요시 했는데 바로 이 화목할 화(和)자가 일본의 집단 정신문화를 칭하는 글자인 셈이다.
해서 예를 들어 우리가 통상 말하는 일본음식인 일식은 사실 화식(和食)이 더 맞는 말이고 한국 소고기를 한우(韓牛)라고 하는데 비해 일본 소고기는 화우(和牛), 즉 와규라고 하는 데서도 알수 있다. 이 외에도 일본옷을 화복(和服), 일본과자를 화과자(和 菓子) 등이다.
헌데 이 화(和)자 앞에 큰 대(大)자 하나를 덧댄 대화(大和)는 ‘야마토’라 해서 교토 인근을 중심으로 했던 고대국가에서 출발해 3세기- 7세기 중엽 일본 영토의 대부분을 지배한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으로 ‘일본’이란 국호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용했던 말이다.
그랬던 만큼 ‘야마토’는 일본 자체를 상징하고 ‘야마토 정신(大和魂)’이라하면 일본인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나타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야마토’란 말이 언급된 한국어 노래가 일본 야구장, 고시엔(甲子園)에서 울려퍼지면서 일본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국 3400여 개 고교가 참여한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중고생을 합쳐 160명뿐인 학교가 개교 이후 첫 우승을 한 것이다. 160명 초미니 민족학교가 멸시와 악조건을 견뎌내고2,500명의 학교를 꺾고 승리한 기적이었다.
이 학교는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교토조선중학교에서 출발해 지금은 교토국제고로 바뀌었다. 2004년 일본인 학생 입학을 받은 후 학생의 70%는 일본계이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공통의 꿈과 미래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우승 후 고시엔 전통에 따라 상대 팀이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가운데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던 것이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이 교가의 4절에는 ‘힘차게 일어나라 대한의 자손’이라는 구절도 있다.
한반도에서 동해를 건너 야마토 땅을 다스리던 훌륭한 선조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기개 넘치는 그 후손임을 다짐하는 긍지가 넘쳐 들린다.
고대 한국과 일본은 이처럼 깊이 얽혀 있지만 한국내 사학계는 물론 정치권은 아직도 갇혀있는 역사관이나 소모적인 정쟁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음이 교토국제고 학생들만도 못하지 않나 싶어 안타깝다.
교토국제고 학생들에게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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