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탄핵 87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다. ‘내란 방조’는 사실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헌법재판관 불임명은 위헌 행위이지만 파면을 정당화한다고 보지 않았다.
의결정족수 151석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법정 의견이다. 다만 재판관 2명은 ‘200석’이 맞다는 각하 의견을 냈다. 다른 재판관 1명은 특별검사 추천 의뢰와 재판관 불임명이 파면을 정당화한다는 인용 의견을 내는 등 엇갈렸다.
헌재는 24일 오전 대심판정에서 한 총리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열어 기각 결정했다.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김복형 재판관 5명은 기각, 정계선 재판관은 인용, 정형식·조한창 재판관 2명은 각하 의견을 각각 제시했다.
탄핵심판에서 파면 결정이 있으려면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하고 6명 이상의 ‘인용’이 있어야 한다. 한 총리처럼 엇갈린 경우 과반수인 5명이 택한 기각이 법정의견이다.
한 총리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 소추되거나 기소된 고위공직자 가운데 처음 사법적 판단을 받은 사례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기각’ 결정 주문을 낭독한 시점은 이날 오전 10시 정각으로, 한 총리는 해당 시점부터 즉시 대통령 권한대행 직책에 복귀했다.

의결정족수 151석 ‘적법’ 6명…기준은 민주적 정당성
헌재는 탄핵소추안을 151석으로 가결한 ‘의결정족수 논란’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국민의힘은 한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만큼 가중 정족수인 200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배척했다.
법정의견을 낭독한 김형두 재판관은 이날 선고에서 “헌법 제71조가 규정하는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과 법령상으로 대행자에게 미리 예정된 기능과 과업의 수행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권한대행 또는 권한대행자라는 공직이나 지위가 새로이 창설되는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공직의 박탈을 통해 헌법을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심판 제도의 취지를 종합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에는 본래의 신분상 지위에 따라 의결정족수를 적용함이 타당하다”고 했다.
헌재는 헌법이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가중 의결정족수(200석, 3분의 2 이상)를 요구한 취지로는 “국가원수인 동시에 행정부 수반으로서 민주적 정당성의 비중, 헌법상 지위 및 권한의 중요성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는 ‘직접 선출’된 대통령과 비교해 “상당히 축소된 간접적 민주적 정당성만 보유하고 있다”는 게 헌재 판단이다. 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아 대통령의 모든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대통령과 지위는 확연히 구분된다는 이야기다.
정형식·조한창 “정족수 200석 맞아…국정마비 우려”
다만 보수 성향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궐위·사고라는 비상상황에서 직무의 공백 및 국가적 기능장애 상태 방지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해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며 이와 뜻을 달리했다. 의결정족수는 200석이 맞는다며 각하 의견을 낸 이유다.
이들 두 재판관은 “이 사건 탄핵소추는 국무총리로서의 직무집행 행위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직무집행 행위를 포괄해 하나의 탄핵소추안으로 발의되고 심의·의결된 것”이라는 점도 의결이 부적법했다는 이유로 들었다.
이들은 차관이 장관 권한대행을 맡을 때 위헌, 위법한 행위를 저지를 경우도 가정했다. 차관은 국무위원이 아니라 탄핵소추가 불가능한데, 본래 직책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권력통제 장치인 탄핵 제도가 작동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정 재판관과 조 재판관은 “(탄핵소추는) 엄격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될 필요가 있다”며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만으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위원들을 대상으로 연속적인 탄핵소추가 가능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국정 마비의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재판관 불임명 “헌법상 부작위지만 파면할 정도 아냐”
마은혁·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 거부 행위를 두고서도 판단이 엇갈렸다.
기각 의견인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 4명(법정 의견)과 인용 의견의 정계선 재판관은 “(임명) 거부 의사를 미리 종국적으로 표시함으로써 헌법상 구체적 작위의무(作爲義務·해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봤다.
이는 앞서 마은혁 재판관 불임명 관련 권한쟁의 심판에서 위헌 결정을 내린 논지와 똑같다. 후보자 3인이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선출과정에 있어 국회가 법을 준수한 만큼 이들을 임명할 헌법상 의무가 있는데, 한 총리는 여야 합의를 촉구하며 거부 의사를 밝혀 위헌이라고 했다.
다만 법정의견(4명)은 “헌법 및 법률 위반의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파면할 수는 없다고 했다.
헌재는 “법 위반 행위의 중대성과 파면 결정으로 인한 효과 사이의 법익 형량을 함에 있어 이와 같은 점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총리를 파면할 경우 “국정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중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더욱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도 했다.
▲헌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목적·의사를 띄고 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나 객관적 자료 없음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역할과 범위에 대한 정치적 논란 ▲추후 조한창·정계선 2인이 임명됨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기각 의견을 낸 보수 성향 김복형 재판관은 “즉시 임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을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뜻을 달리했다.
한 총리가 당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해야 할 작위 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기간을 ‘즉시’가 아니라 ‘상당한 기간 내’라고 해석한 데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1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여야 합의 촉구’ 발언을 내놓은 것 등을 두고도 “임명 거부 의사를 종국적으로 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유일한 “파면” 정계선…”상설 특검 추천 지연도 위법”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낸 진보 성향 정계선 재판관은 헌법재판관 불임명이 한 총리의 파면 사유라는 입장이다.
재판관 불임명 행위는 ‘6인 체제’로는 선고를 할 수 없는 특성상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를 초래할 수 있고,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상태에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타격이 걷잡을 수 없이 극대화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재판관은 나아가 “최상목(권한대행)은 현재까지도 마은혁(후보자)을 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고 있고 이로써 헌정질서 수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데 이는 피청구인(한 총리)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재판관은 이 뿐만 아니라 내란 상설특검 임명절차를 회피한 점도 한 총리에 대한 파면 사유라고 판단했다.
헌재 법정의견은 권한대행인 한 총리가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을 ‘지체 없이’ 의뢰해야 한다는 특검법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체 없이’라는 규정에서 뜻하는 기간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반면 정 재판관은 한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한 이래 특별검사 후보 추천을 의뢰하지 않은 점은 “거부권이 없는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온다”며 현행 특검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런 행위는 헌법상의 공익실현의무·헌법수호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의 성실 의무를 위반한 데다 특검 수사를 방해 또는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 또는 의사로 임명 절차를 회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尹 사건과 겹쳐 기대 모은 ‘내란 방조’ 사실관계 부인
헌재는 ‘내란 묵인·방조’ 쟁점에 대해 각하 의견 2명을 뺀 6명의 의견으로 헌법과 법률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국회 계엄 해제요구 결의안 가결 후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지 않았다는 등 한 총리가 내란에 관여했다는 증거나 객관적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쟁점과 겹쳤던 쟁점으로 이날 헌재의 판단에 관심이 모였다. 그러나 헌재는 이런 시각과 달리 한 총리가 내란 행위를 묵인·방조했다는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했을 뿐 판단을 더 내놓지 않았다.
이들 6명의 재판관은 비상계엄 사태 직후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헌법에 없는 ‘국정 공동 운영’을 시도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헌법을 위반한 행위라 보지 않았다.
또 ‘김건희 특검법’이나 ‘채해병 특검법’ 등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점도 대통령의 소위 ‘거부권 남용’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