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는 12세 때 폐결핵에 걸렸다. 그 때문에 왼쪽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는데 얼마 후 오른쪽 다리에도 감염이 진행됐다. 또 다시 절단수술을 받아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응하지 않고 끈질지게 치료를 3년간이나 받고 이 후에도 굴하지 않는 열정으로 30년 가까이 더 살다가 54살에 눈을 감았다.
헌데 그가 다른 다리 하나마저 잘라야 하는 절박한 순간에 떠오른 영감으로 불멸의 시 하나를 남겼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 지라도 감사한다/ 내게 정복 당하지 않는 영혼을 주셨음을/…/ 비록 이 문이 좁더라도/ 아무리 많은 고난에 처할 지라도/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인빅투스(Invictus)’ 란 시로 이는 라틴어로 ‘정복되지 않는다’란 뜻이다.
이 후 이 시는 많은 저명인사들의 연설에서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영화 등에서도 인용되어 왔으며 특히 마지막의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문신으로 새겨진 싯귀 중 하나가 되었다.
허나 누구보다도 이 시 하나에 의지해 외롭고 길고도 혹독했던 시간들을 견뎌내고 무려 27년 6개월 만에 자유의 몸이 된 사람이 있었다. 남아프라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였다.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Apartheid)가 심했던 남아공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 (ANC)의 불복종 운동을 주도하면서 인종차별 철폐투쟁으로 맞섰다. 그러자 ANC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권로부터 테러리스트 단체로 지목받고 경찰에 체포되어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수감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는 감옥에서 석방되자 복수의 칼 대신 화해와 용서로 자신을 감금했던 모든 이들을 감격시키고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 무릎을 꿇게 했을 뿐아니라 모든 인종이 참가해서 실시한 최초의 총선거에서 남아공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용서하되 잊지 말자 ’는 말로 백인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들끓는 흑인들을 설득하는 한편 용서와 화해로 과거사 청산을 실시했다.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면 사면했으며, 피해자 무덤에 비석을 세워줌으로써 당시 피해자들이 잊히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유색인종을 가혹하게 탄압해온 백인우월주의의 역사는 보복이 아닌 용서에 의해 종말을 맞고 그는 연임을 마다하고 5년 단임으로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헌데 앞서 만델라가 출옥했을 당시 환영하는 시민들에게 연설할 때 바로 그 옆에서 마이크를 받쳐 들고 도운 수염을 짙게 기른 한 젊은 이가 있었다. 만델라 석방 범국민환영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그에게 만델라는 인종분리정책을 철폐하기 위한 백인정권과의 협상을 맡겼으며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헌법을 만드는 제헌회의 의장이기도 했다. 해서 그를 만델라의 후계자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사업가로 변신했다.
얼마 후 성공한 기업가에서 정치로 돌아온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지금의 남아공 대통령 시릴 라마포사다. 지난 21일 정상회담을 위해 백악관을 찾은 그에게 트럼프는 돌연 남아공에서 백인들이 인종학살을 당하고 있다고 몰아붙였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를 모욕할 때와 같은 방식이었다.
그러나 라마포사는 젤렌스키와 달리 끝까지 흥분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점잖게 응수했다. 그리고 그가 던진 한마디 대답, ‘대통령님, 저는 당신께 드릴 비행기가 없습니다.’ 카타르에서 트럼프에게 준 4억불 짜리 비행기 선물을 빗댄 말이었다. 약소국의 무력함 그러나 품격 있는 굴신하지 않는 저항의 외침! 그 날의 압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