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에서의 긴장 해소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럽 주요 국가 정상이 우크라이나를 잇따라 찾는 와중에 바이든 대통령 방문만 감감무소식이어서다.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문제는 지난 1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를 계기로 관심사로 부상했다.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자국으로 초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찾는다면 역내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되고 러시아 쪽에도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의견이었다. 현재까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정상이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했었다.
그러나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여부에 말을 아끼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부대변인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 방문 여부에 “현시점에서는 발표하거나 예고할 만한 방문 계획이 없다”라고 했다.
현재로서는 정상 방문보다는 정상 통화, 그리고 행정부 각료 및 당국자들 간 소통이 중심이라는 게 백악관 설명이다. 장-피에르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를 포함한 행정부를 통해 정기적으로 접촉 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이력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인 지난 2017년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었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역시 부통령 시절이던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등 물자 지원을 비롯해 강력하고 신속한 대응을 주장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우크라이나 방문을 두고는 명확한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면서 갖가지 해석이 나오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올해 초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두고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에 드러났던 엇박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라는 발언까지 하며 러시아의 위협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침공 가능성은 지난해에도 있었다”라며 언론과 일부 국가 원수 발언이 공포를 조성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후 백악관은 이를 의식한 듯 러시아의 침공 위협에 ‘임박(imminent)’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CNN은 미국 당국자를 인용,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능한 한 빨리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바이든 대통령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은 없었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은 극도로 작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 정상 통화가 잘 되지 않았다며 러시아 공격 위험의 정도를 두고 두 사람 간 의견 불일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른바 ‘사소한 습격(minor incursion)’ 표현으로 논란을 빚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 방문을 일종의 마지막 보루로 남겨 뒀다는 분석도 있다. 침공 위기에 놓인 당사국이 우크라이나긴 하지만 실제 협상은 러시아와 미국 중심인 만큼, 바이든 대통령의 직접 방문도 최후의 행보 중 하나로 검토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혼란 이후 한층 신중해진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행보를 시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타임지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대통령으로서 두 번째 주요 외교 정책 시험대”라고 평가하고, “실수할 공간이 거의 없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중국 전선 확보가 최우선 순위인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기조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있다. 타임지는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아 민주주의 국가를 결집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외교 정책을 집중하기를 원하며 취임했다”라고 설명했다.
카네기국제평화기금 러시아.유라시아 전문가인 유진 류메르는 이와 관련, 타임지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 외교 정책 문제에서 2순위로 강등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점을 매우 명확히 했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인근의 긴장감이 쉬이 가시지 않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과 관련해 대량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사실상 ‘침공 시나리오’에 해당하는 러시아의 단계별 행동을 일일이 나열해 눈길을 끌었다.
타임지는 알렉산드르 베르시보우 전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 분석을 인용, 이런 미국의 행보를 ‘폭로에 의한 억지(deterrence by disclosure)’ 전략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이런 미국의 전략으로 러시아가 이른바 ‘가짜 깃발 작전(false flag operation)’ 등 일부를 수정해야 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