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아직도 2021년 11월 21일이다”
격리 생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지하 동굴에서 생활하던 스페인 여성이 500일 만에 지상으로 나왔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스페인 출신 여성 산악인 베아트리스 플라미니(50)는 스페인 남부 모트릴 인근 동굴에서 지상으로 나와 가족들과 만났다. 플라미니는 2021년 11월 21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개월 전 지하 70m 굴속으로 내려가 세상과 격리돼 생활했다. 우크라전 발발 소식도 몰랐다.
이번 실험은 사람이 극도의 고립 환경 속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했다. 스페인 알메리아, 그라나다, 무르시아 대학 소속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극도의 고립이 인간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연구진은 주기적으로 플라미니에게 물과 식재료 등 생활필수품을 공급했으나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비상 상황을 대비해 연구진은 패닉 버튼을 준비했으나 플라미니는 이를 누르지 않고 약속된 500일을 모두 채웠다.
동굴에서 나온 뒤 기자회견에서 플라미니는 “지난 1년 반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며 “나오기 싫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플라미니는 동굴 안에서 60권에 달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시간을 계획적으로 보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동굴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파리가 몰려들었을 때를 꼽았다. 그는 “파리가 동굴 안에서 애벌레를 낳았는데 이를 내버려 두니 파리가 온몸을 뒤덮었다”면서도 “도전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화장실 문제는 동굴 속 지정된 장소에 용변을 버려 모으는 것으로 해결했으나 500일간 샤워는 하지 못했다. 그는 “물이 부족해 아직도 샤워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극한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500일은 더 샤워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플라미니는 500일 만에 마주한 햇빛에 시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선글라스를 쓴 채로 지상으로 올라왔다.
외신은 “(플라미니의 이번 실험은) 인간이 동굴에서 홀로 보낸 최장 기록이지만, 기네스 세계 기록에 이러한 항목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현재 기네스북에 기록된 ‘지하 최장시간 생존 기록’은 2010년 칠레의 한 광산에서 69일 동안 갇힌 33명의 기록이다.
스페인 관광부 헥토르 고메즈 장관은 플라미니의 도전에 대해 “극한의 지구력 테스트로 매우 큰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500일간의 도전을 두 대의 카메라로 기록했고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