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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 침묵과 소음 사이

2025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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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니스트

2011년 독일의 한 오페라 극장에서 있었다고 알려진 일이다. 푸치니의 토스카 오페라 3막 클라이맥스, 주인공 사형 집행 장면에서 총성이 울려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모두 긴장하고 숨죽이고 있을때 갑자기 객석에서 아주 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악은 흐트러졌고, 장면은 중단됐다. 비극적인 죽음의 순간은 순식간에 코미디로 변해버렸고, 관객들은 실소했다.

2018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공연 중 아주 조용해야할 악장에서 관객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멈추지 않고 울렸다.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는 즉시 지휘봉을 내리고 연주를 중단했다. 그리고 관객석을 향해 돌아선 뒤 ‘이것은 예의가 아니다’라는 취지로 강하게 질책했다. 이 외에도 공연중에 소음으로 인한 중단과 질책은 많았다.

이 장면들은 종종 ‘권위적인 지휘자’의 일화로 볼 수 있겠지만 실상은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연장에서 침묵은 누구의 책임인 것인가?

최근 한국에서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임윤찬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협연 중 갑자기 객석으로부터 우렁찬 남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관객의 휴대폰에서 유튜브 정치 방송 영상이 무려 30초간이나 재생된 소리였는데 3층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때아닌 이 사고는 그 동안 최악으로 알려졌던 2012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말러 작품 연주공연 중 울린 휴대전화 소음 사고를 무색케하며 이를 다시 소환했다. 말러 공연에서의 휴대전화 소리 같은 소음은 다른 어떤 레퍼토리보다도 더 치명적으로 들린다.

왜냐하면 작품 속 침묵은 단순한 쉼표가 아니고 음악의 일부이며, 다음 소리 직전의 긴장 상태로 느린 악장에서 공백이 아니라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 속으로 휴대전화 소음이 끼어드는 순간, 음악은 방해받는 것이 아니라 파괴되는 것이다.

Photo by Robert Katzki on Unsplash

여기서 아이러니하게도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떠오른다. 이 곡에서 연주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악보는 비어있고 지휘자는 지휘봉을 들고 있을 뿐.

그러나 음악은 거기에도 있다. 객석의 기침, 의자의 삐걱이는 소리, 누군가의 옷깃 스치는 소리, 바깥의 소음 등 주위의 모든 것이 음악이 되는 거다.
케이지는 말했다. ‘침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계획되지 않은 것, 통제할 수 없는 것, 삶이 만들어내는 우연들이 진짜 음악이란 거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왜 ‘4분 33초’에서는 휴대전화 소음이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말러에서는 ‘폭력’이 되는 것일까?

그 차이는 음악이 아니라 청중의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케이지의 음악에서 관객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의식적으로 듣는 존재가 되는 반면, 말러의 음악에서 관객은 자신의 소리를 의식적으로 지우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헌데 휴대전화 소음은 이 둘 모두에 어긋나는 셈이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우연이 아니라 방치의 결과이며, 공동의 청취가 아니라 개인적 세계의 침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약속이 깨질 때 무대 위 음악은 무너지기 때문이어서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언제 소리를 내야 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를 아는 감각을 배워야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지금, 우리는 케이지의 공연장에 앉아있는지도 모른다. 계획했던 것들은 침묵했고, 예상치 못한 소음들이 한 해를 가득 채웠다. 누군가의 휴대폰 벨소리처럼 뜬금없이 찾아온 일들. 그것을 방해라고 여기든, 삶이 들려준 또 다른 선율로 받아들이든, 중요한 건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날들, 예상 밖의 순간들, 그것들이 만든 불협화음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음악으로 들었는가가 아닐른지.

새해의 공연장이 곧 열린다. 그 감각을 다시 조율하며 지나온 침묵과 소음들을 아름다운 배경음으로 삼아 다가오는 새해에는 각자 자신만의 더 깊은 선율로 다듬어가길 응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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