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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 담배와 자유, 그 연기의 끝에서 무엇을 선택하는가

2026년 0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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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니스트

서울 어느 골목, 반지하 단칸방마저 잃은 여자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집세가 오르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방을 내주면서도 담배만은 끊지 않았다. 그녀에게 담배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마지막 언어였기 때문이었다. 집도, 안정도, 미래도 없는 삶에서 그녀가 끝내 붙들고 있던 것, 그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 속에 그녀의 존엄이 있었던 거다. 영화 ‘소공녀’의 미소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비단 미소 한 사람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기원전 3000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담배 연기를 신께 올리며 기도를 전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쿠바에 발을 디뎠을 때, 원주민들이 내민 것은 황금이 아니라 말린 담배 잎이었다.

그 향기에 매혹된 유럽 귀족들에게 나돌던 파이프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자의 벗이 됐고, 전쟁터에서 군인들은 담배 한 개비로 공포를 잊으려했다. 그러다가 담배는 신분에 관계없이 왕도, 거지도, 시인도, 군인도 같은 방식으로 불을 붙이는 애호물이 됐다.

소위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담배를 곁에 두었다. 카뮈는 ‘나는 담배를 피울 때 비로소 생각한다’고 했고, 프로이트는 구강암으로 수많은 수술을 받으면서도 시가를 놓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파리의 카페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며 실존을 논했고, 마크 트웨인은 ‘금연은 쉽다. 나는 수백 번 했다’고 농담했다.

담배는 스크린 위에서도 신화가 됐다. 험프리 보가트의 담배는 냉소와 낭만의 결정체였고, 제임스 딘의 입술 사이 담배는 반항 그 자체였으며, 오드리 헵번이 긴 홀더에 끼워 문 담배는 우아함의 코드가 됐다. 홍콩 느와르의 빗속에서, 프랑스 누벨바그의 카페에서, 담배는 이야기의 결에 스며들어 감정을 증폭시켰다. 이렇게 스크린 속 스타들이 담배를 피울 때, 수억 청춘들은 그 연기에서 멋을 배웠다. 이미지가 욕망보다 빠르게 전염된 거다.

그 욕망을 가장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 말보로(Marlboro)였다. 여성용으로 팔던 말보로가 전면 개조되어 나타난 것이 광활한 서부 평원, 길들지 않은 말, 거친 일상 속 조용히 담배를 피워 무는 카우보이, 말보로 맨이었다.

허나 그는 담배만을 판 게 아니었다. 자유도 팔았다. 그러나 자유의 얼굴로 등장한 실제 모델들은 하나둘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담배 회사를 향해 마지막 숨을 모아 소송을 제기했다. 신화는 부서졌지만 브랜드는 살아남았다.

담배를 둘러싼 가장 오래된 물음이 있다. 우리는 선택해서 피우는가? 니코틴은 첫 흡입 후 7초 만에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한다. 그러면 쾌감 회로가 켜지고, 몸은 그것을 기억하게 된다. 담배 회사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수십 년간 ‘선택은 당신의 자유’라고 광고했다.

그러나 중독은 자유의지의 경계를 조용히 무너뜨린다. 소공녀 미소가 집 대신 담배를 선택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선택이었을까? 그럼에도 흡연자들은 말한다. ‘담배를 피울 때 비로소 나만의 시간이 생긴다’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계에서 잠깐 멈추는 의식(儀式), 담배는 중독인 동시에 일종의 철학인 셈이었다.

마침내 지난 주, 영국 상하원은 ‘담배 및 전자담배 법안’의 최종안에 합의했다. 2009년 이후 태어난 사람은 평생 담배를 살 수 없게 하는 법안이다. 2027년 1월 발효를 앞두고 찰스 3세의 국왕 재가만이 남았다.

기원전 3000년 신께 올리던 연기에서, 카뮈의 원고지 옆 재떨이에서, 말보로 카우보이의 서부 평원에서, 미소의 반지하 골목 어귀에서의 그 모든 연기들이 이제 멈추게 된 것이다.

연기는 언제나 위로 올라간다. 우리의 욕망처럼, 한숨처럼, 기도처럼. 그리고 사라진다. 연기는 사라지지만, 태운다는 행위만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증명했던 것이었을텐데 담배 없는 세대 중에서는 자신만의 몇 분을 어디서 찾게 될는지 궁금해진다.

이전 칼럼 [김학천 타임스케치] 인류가 던지는 마지막 패스, ‘헤일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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