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달로 향했던 아르테미스 2호의 오리온 캡슐이 샌디에이고 인근 태평양에 떨어졌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반세기 만이다. 음속 33배의 속도로 대기권에 진입하는 6분간, 2,760도의 열기 속에서 통신은 완전히 끊겼다. 그 침묵의 6분이 끝나고 낙하산이 펼쳐졌을 때 지구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떠오른 기도가 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로 시작하는 성모송, ‘헤일 메리(Hail Mary)’다.
가톨릭의 가장 오래된 이 기도문은 죽음의 문턱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더 큰 존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탄원이다. 기도는 이렇게 끝난다.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흔히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Ave Maria)’라고 부르는 그 곡이 사실 성모송과는 아무 관계가 없이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슈베르트가 붙인 곡의 원래 가사는 영국 시인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여인’ 중 한 장면이었다. 스코틀랜드 처녀가 절벽에 앉아 아버지의 무사귀환을 비는 노래였다. 라틴어 ‘아베 마리아’는 그 장면에서 그녀가 부르는 기도의 첫 두 마디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곡이 워낙 아름다워서 후대 사람들이 성모송 가사를 얹기 시작했다. 슈베르트 본인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신성한 성모 찬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해가 명곡을 낳은 셈이다. 그리고 지금 이 곡은 전 세계 장례식과 결혼식에서 연주되곤 한다. 인간이 간절함을 느낄 때 본능적으로 찾는 선율이 된 거다.
이 ‘헤일 메리’가 스포츠의 언어가 된 것은 1975년이었다. 달라스 카우보이스의 쿼터백 스타우박이 경기 종료 직전, 거의 불가능한 거리에서 엔드존을 향해 공을 던졌다. 기적처럼 터치다운이 성공했고 그는 말했다. ‘눈을 감고 성모송을 외우며 던졌습니다.’ 이 때부터 ‘헤일 메리 패스’라는 말이 생겨났다.
영화 ‘God Father’에서 둘째아들 프레도 꼴레오네도 이 기도를 외웠다. 가문을 배신한 그는 맑은 날 아침 호수 위 보트에서 성모송을 소리 내어 읊었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다. 코폴라 감독은 이 장면에 음악을 깔지 않았다. 성모송 기도 중의 죽음 — 이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이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연출이었다.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는 그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다. 태양을 잠식하는 미생물 때문에 지구가 멸종 위기에 처하자 인류는 편도 연료만 실은 우주선 한 척을 쏘아 올린다. 주인공 라일랜드는 자원하지 않았는데도 붙잡혀 강제로 실려 갔다.
그런 겁쟁이가 수십억 마일 떨어진 우주 한가운데서 외계 생명체 ‘로키’와 우정을 나누고 그를 살리기 위해 결국 자신의 귀환을 포기한다. 이처럼 ‘헤일 메리’란 처음부터 용감한 사람이 던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국 던지는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헤일 메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던져지고 있을 것이다. 지난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합동 공습으로 시작된 전쟁 40여 일 만에 미국과 이란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마주 앉았다.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47년 만에 처음으로 양국 최고위급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밤샘 3라운드 협상에도 호르무즈 통제권을 둘러싼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며칠 후면 2주 휴전이 만료된다.
그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도, 해협을 지나는 군함 위의 사람들도, 모두 연약한 인간들이다. 프레도가 마지막으로 외운 것도, 스타우박이 눈을 감고 되뇐 것도, 아르테미스 승무원들이 2,760도의 불꽃 속 통신 두절 6분 동안 마음속으로 붙든 것도 아마 모두 같은 기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슬라마바드 협상 테이블에서 오가는 말들 또한 하나의 ‘헤일 메리’일 게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고, 실패하면 다시 전쟁이 시작되며, 그럼에도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기도.
인류는 늘 그렇게 해왔다. 눈을 감고, 성모송을 외우고, 공을 던졌다. ‘헤일 메리는 항상 같은 구조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고,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나며, 그럼에도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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