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운드만 없으면 됩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달까지 다녀온 남자의, 오늘 밤 가장 큰 긴장은 시구였다.
목요일 하루 휴식을 취하고 주말로 접어드는 금·토·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홈 3연전이 시작되는 빅에이 스타디움. 클럽하우스 분위기는 명랑했다. 오늘 선발로 예정된 좌완 샘 알더게리 옆으로 주루룩 체이스 실세스, 미치 패리스, 샘 바크만이 나란히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반면, 클럽하우스 가운데 TV들 옆으로 바닥에 깔아놓은 골프 퍼터 연습 놀이기구를 즐기는 소리아노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라운드로 나오니 오늘의 특별 게스트를 향한 관심이 훈련 열기를 압도했다. 최초의 흑인 달 비행사, NASA 아르테미스 II 파일럿 빅터 글로버 주니어. 올해 4월 지구로부터 406,771km를 날아갔다 돌아온 그가 오늘은 에인절스 스타디움 마운드 앞에 섰다. 포모나 출신의 남가주 토박이인 그는 귀환 두 달 만에 고향 구장을 찾았다.

“긴장은 피할 것이 아니라 함께 앉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긴장은 지금 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우주발사대 엘리베이터와 시구 마운드를 같은 선상에 놓는 그답게, 약속은 지켜졌다. 바운드 없이, 포수 미트를 향해 공은 꽂혔다. 공을 받아준 선수는 에인절스의 대표선수인 마이크 트라웃이었다. 둘이 진한 포옹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 알더게리, 이탈리아의 자존심
하지만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마운드의 샘 알더게리(#61)였다.
이탈리아 베로나 출신, MLB 역사상 최초로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선발투수. 상대는 탬파베이의 에이스 셰인 맥클라나한 — 두 차례 올스타에 빛나는, 토미 존 수술을 딛고 돌아온 좌완 강자였다. 주눅 들 법도 했지만, 알더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긴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자신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위치를 켜듯 전환하고, 알고 있는 걸 그냥 하면 됩니다.” 포스트게임 인터뷰에서 알더게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의 핵심 무기는 체인지업이었다. 우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드는 체인지업에 탬파베이 타선이 맥을 못 췄다. 커터와 슬라이더도 곁들이며 5이닝 3피안타 1실점 4탈삼진. 에인절스는 1회 2점, 3회 2점을 추가하며 일찌감치 4-0 리드를 잡았다.

◆ “이탈리안이 이탈리안을 돕다”
타선에선 트레이 맨시니가 불을 지폈다. 3루타를 포함한 2타점으로 승리의 발판을 닦았다. 맨시니 역시 이탈리아계 미국인 — 두 이탈리안이 같은 날 같은 유니폼을 입고 빛났다.
경기 후 기자가 물었다. “맨시니의 첫타석 3루타 2타점 활약, 어떻게 봤나요?” 옆에 있던 MLB 기자인 레트 볼린저가 맞장구를 쳤다. “ 이탈리안이 이탈리안을 도운 셈이네요.” 알더게리는 그 말에 환하게 웃었다.
“그는 훌륭한 선수이고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거 아니겠어요.” 잠시 뜸을 들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이탈리안이 이탈리안을 도왔죠 — 맞죠?(Italian helping an Italian, right?)”

◆ 불펜 삼총사가 마무리하다
6회 이후는 불펜의 시간이었다. 미치 패리스가 2.2이닝을 소화하며 중간 다리를 놓았다. “소위 무의미한 이닝이라고들 하지만 1-0이든 10-1이든 그 이닝은 중요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던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체이스 실세스는 1이닝을 깔끔하게 틀어막았다.
9회 탬파베이가 1점을 추격하며 4-3으로 좁혀오는 위기의 순간, 라이언 제퍼잔이 등판했다.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타자는 반드시 잡을 수 있다고 믿었어요.” 제퍼잔은 클러치 아웃카운트를 채워냈고, 커트 스즈키 감독은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오늘 밤은 실세스, 패리스, 제퍼잔이 해줬습니다. 다른 날엔 다른 선수가 나서겠죠. 우리는 그렇게 이기는 팀입니다.”
달에서 돌아온 사나이는 바운드 없이 시구를 마쳤고, 이탈리아 청년은 마운드에서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번 새겼다. 이탈리안이 이탈리안을 도왔고, 에인절스는 이겼다. 빅에이의 금요일 밤은 그렇게 물들었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