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인절스 스타디움 홈 덕아웃.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도 한동안, 나는 그 얼굴이 낯설었다.
아시안. 감독석에 앉은 아시안 얼굴.
MLB 역사상 아시아계 혈통의 정식감독은 전부 일본계(돈 와카마쓰, 데이브 로버츠, 커트 스즈키)다, 그 중에 스즈키 매니저는 내가 올 시즌 경기에 참관할 때마다 기자회견에서 마주하는 얼굴이다.

구장 안에서 다들 그를 “쥬우크”라고 부른다. 1983년 하와이 마우이섬 와일루쿠 출생. 4세 일본계 미국인이다. 어린 시절은 마우이다웠다. 해변, 친구들, 온갖 운동. 모두가 서로 알고 삼촌 이모 부모님이 항상 가까이 있는 그 작은 섬에서 자란 소년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 원정을 나섰다. 장학금도 없이 Cal State Fullerton에 워크온으로 들어갔고, 2004년 칼리지 월드시리즈 결승에서 결승 적시타를 쳤다. 그해 오클랜드에 2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이 순간을 스즈키 감독은 이렇게 회고했다,
“하와이에서 왔고, 워크온으로 시작해서, 2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 그게 제 인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었어요.”
그가 풀러튼 신입생이던 2002년, 기숙사 TV로 에인절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지켜봤다. 그 팀의 감독이 됐다. MLB 역사상 최초의 하와이 출신 정식 감독. 코칭 경험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일본인인가.
이 질문을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기자 몇 명에게 던져봤다. 돌아온 답은 거의 한목소리였다.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이미 4세대를 거친 일본계라 얼굴과 이름은 일본이지만 생각은 완전히 아메리칸이라고. 한 일본인 기자는 오히려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스즈키보다 더 일본인에 가깝다고 했다. 로버츠는 오키나와 — 일본 영토 — 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일본인이기 때문이라고.
그 말이 맞다. 스즈키는 일본인이 아니다. 그는 하와이안이고 아메리칸이다. 얼굴과 이름이 만들어내는 첫인상과, 그 안에 담긴 실제 정체성 사이의 거리 — 어쩌면 그 거리 자체가 이 사람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이다. 아시안의 얼굴을 하고, 아메리칸의 방식으로 덕아웃을 이끄는 사람.

시즌 홈개막 첫날 기자회견에서 목표를 물었다. 잠깐 웃더니 말했다.
“한 경기도 더 지지 않는 것. 농담이에요, 농담.”
웃음이 가시고 나서 나온 말이 진짜였다.
“오늘 뭘 배울 수 있을까 — 그게 매일 구장에 나오는 이유예요.”
42세. 2026 빅리그 감독 데뷔. 배우러 구장에 온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잘 나가던 시점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하던대로 하세요, 더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더 잘하려 하지 말라는 감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한 말 같기도 하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에게 건네는 말은 짧았다. “내일 다시 해봐요.” 부상 선수 이야기가 나오면 먼저 이 말이 나왔다. “제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그 사람입니다.” 아시안 얼굴의 MLB 감독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그냥 사람이었다.

스즈키 감독의 이야기가 그냥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로 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다. 그냥 마우이 출신 하와이안이 MLB 감독석에 앉아 매일 배우러 구장에 나온다. 그게 전부다. 그런데 그 단순한 사실이, 한국 야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과 겹친다. 자랑스러움이 때로는 우물 안을 더 깊이 파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날은 또 겸손해 진다.”
소리아노 선발 투수가 호투를 한 이후, 인터뷰에서 쥬우크는 이런 멋진 답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세상은 이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