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일파의 글씨를 독립운동가의 작품으로 잘못 전시하고, 자신이 소장한 유물이라는 사실까지 뒤늦게 공개해 논란을 빚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지 불과 15개월 만이다.
한국일보와 MBC 등에 따르면 유 관장은 21일 입장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내주신 깊은 신뢰와 우리 박물관 직원들이 쌓아 올린 가치가 저의 개인적인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실추된 박물관의 명예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제가 관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그간의 모든 비판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며 국민과 애국지사 유족, 박물관 직원들에게 사죄했다.
이번 파문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7월 개막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라는 서예 작품을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라는 뜻의 이 글씨는 당초 애국지사의 유묵으로 전시됐지만, 외부 제보를 통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물관은 지난 8월 해당 작품을 전시장에서 철거하고 9월 재검증 결과를 발표했지만, 유물의 소유자가 다름 아닌 유 관장 본인이라는 사실은 당시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유 관장은 2019년 온라인 경매에서 해당 작품을 5만원에 낙찰받았다. 이후 올해 5월 8일 자신이 직접 특별전 출품작으로 추천했고, 박물관은 불과 14일 만인 5월 22일 전시 위치까지 확정했다.
문제의 작품은 당초 전시 기획 목록에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별도의 서예 전문가 감정이나 충분한 진위 검증 없이 관장의 판단을 사실상 수용한 과정도 비판을 받았다.
유 관장은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 자신이 서예사 전공자라서 확신했다”고 해명했다.
소장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개인적인 자랑으로 비칠까 우려했고, 친일파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는 미술사학자로서 실수를 인정하기 부끄러웠다고 설명했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등에 따르면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작품 검증 부실과 이해충돌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관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유 관장은 당시 두 차례 허리를 숙여 사과했지만, 결국 이틀 만에 사임 의사를 공식 발표했다.
유 관장은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로 널리 알려진 미술사학자로,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지냈다. 지난해 7월 이재명 정부의 첫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사임 입장문에서 “1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는 영예로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자 영광”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차관급 정무직으로, 정식 면직은 임면권자인 이재명 대통령의 사표 수리가 이뤄져야 확정된다.
보도 확인: 한국일보·MBC·한국경제·경향신문·오마이뉴스 (2026년 10월 19~2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