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칼럼(7) 여론정치와 유림①:문 정부의 시민단체 활용법

현 정부는 과거 어떤 정부보다도 여론을 숭상한다.

끊임없이 여론 조사를 한다. 전문가들의 평가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도 ‘국민공론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의 뜻’에 따랐다는 모양새를 갖추고자 한다. 또한 공론위원회를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위원회’ 혹은 ‘이사회’에 ‘시민사회’를 대표한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빠지지 않고 포함되는 걸 보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운동가들을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시민운동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일반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집권 초기에 정부는 시민운동가들이 시민단체에서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한 경력을 공무원 호봉 계산에 포함하려다가 여론의 반대로 취소했던 일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공공의료를 위해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시민운동가들이 추천하는 학생들을 입학시키겠다고 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로서의 실력보다 ‘인성’이 중요하고 이 ‘인성’을 심사하는 데 ‘도덕적으로 우월한’ 시민운동가들이 적격이라는 전제가 공공의대 추천제에 깔려있다. 

삼성그룹의 최고 경영진이 ‘준법경영’을 하는지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도 시민단체활동가는 시민사회를 대표한다는 이유로 위원으로 포함되어 있다. 아마 앞으로도 비슷하게 각종 이익집단, 공공기관, 언론단체, 대기업, 공기업 등에 공론위원회, 감시위원회, 윤리위원회, 이사회 등이 만들어지고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시민운동가들이 시민사회를 대표한다는 이유로 대거 참여할 것이 예상된다. 

얼핏 생각하면 여론을 중시하고 시민사회의 공론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시민단체는 시민사회를 대표하지 않는다. 원래 시민단체는 일반 시민들이 다양한 목적을 갖고 

자발적으로 만든 비영리 단체들을 일컫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집회결사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이를 말한다. 이 다양성(pluralism)이 바로 민주사회의 특징이다. 예컨대 북한주민들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침묵하고 있는 통일관련 시민단체가 있는가 하면 북한인권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통일정책에 반영할 것을 촉구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이 두 단체 중 어느 단체가 시민사회를 대표하는가? 

더구나 많은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이 부족하여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실제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 재벌기업 못지 않게 상의하달 식으로 의사가 결정된다는 것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기존의 시민단체들이 진정한 의미의 NGO로서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고 정부를 감시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즉 시민단체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top-down 방식으로 일사불란하게 조직이 운영될 때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시민단체는 관변단체가 된다. 

민주주의는 대표성의 문제를 선거, 특히 비밀투표를 통해서 해결한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투표하여 자신을 대리해서 일정 기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할 사람들을 뽑는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이 있다면 국민투표를 한다.  여론조사를 하거나 촛불시위를 하여 국민을 대표할 사람을 뽑지는 않는다. 혹은 표본집단을 만들어 그들의 의견을 ‘국민의 뜻’, ‘국민의 명령’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시민단체활동가를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들에게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특권층으로 만드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나에게는 보인다.

사실 정부의 여론정치는 조선의 양반사회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이다.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다수의 의견에 맞추는 것은 성리학의 핵심가치였다. 이는 국왕에게도 해당되었다.  유교적 도덕정치에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국왕의 권력은 민주공화국처럼 삼권분립에 의해 견제되었던 것이 아니라 유학자 관료들, 그 중에서도 국왕의 잘못을 간할 수 있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젊은 관료들의 감시를 통해 제어당했다. ‘청직’이라 하여 특별한 도덕성을 요구받는 삼사의 직책에는 주로 갓 문과에 급제한 실력있고 집안좋은 젊은 관원들이 배치되었다. 관료들이 왕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을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조선의 왕권은 명.청대의 중국보다 훨씬 약했다.  국왕의 일거수 일투족이 공과 사의 구분없이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 국왕뿐만 아니라 만조백관이 직급이 낮은 삼사의 관원들에게  감찰당하고 탄핵당할 수 있었다. 세계사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다는 “조선실록”은 젊은 사관들의 충정어린 도덕정치의 산물이었다. 유교국가에서 ‘역사바로세우기’는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역사의 심판을 위해 악행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고 덕행 또한 기록하여 윤리의 모범으로 삼고자 했다. 역사적 평가는 공정해야 하기 때문에 사사로운 개인에게 맡길 수 없었다. 마치 종교조직의 사제단이 교리해석을 독점하듯이 유교에서 역사는 가장 포괄적이고 공의로운 집단인 국가가 독점적으로 서술해야 하는 것이다. 

관직자가 아닌 대부분의 선비들은 향촌사회에서 누가 양반이고 누가 더 양반인가를 품정했다. 조선후기에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누구나 알아주던 양반가문들이 있었고 어느 집안이 더 양반인지 따지는 관습이 있었다. 이전에 올린 포스팅에서 이야기했듯이 조선의 지배계층이었던 ‘양반’은 자격요건이 명확한 법적 개념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유림공동체에서 쌓아올린 평판에 따라 인정받는 문화적인 개념이었다. 즉 양반신분은 유림이라는 여론 공동체로부터 사회적 공인을 받지 않으면 획득될 수 없는 지위였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돈으로 양반신분을 살 수 없었다. 양반가문의 현조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인물이라고 유림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양반으로 사회에서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었다. 

특히 국왕으로부터 시호를 받은 조상에게 부여되는 불천지위(영원히 제사를 받는 지위)는 사후 사대봉사가 끝나는 무렵 지역 유림이 만장일치로 찬성하여 국왕에게 청원할 때 얻어지는 명예였다.  불천위뿐만 아니라 사후에 국왕으로부터 관직을 하사받는 ‘증직’, 돌아가신 인물의 윗대 조상들에게 관직이 주어지는 ‘추증’, 서원과 향교에서 배향되는 특권, 조상을 제향하는 사당과사우, 서원의 건립, 문집의 발간 등 조상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모든 행적과 명예가 지방유림의 지지와 천거가 있어야 공인될 수 있었다. 이는 ‘아무개의 자손’이라는 양반의 지위의 높고 낮음이 유림이 주도하는 지역사회의 ‘여론’에 달려 있었음을 뜻한다. 

유림이 향촌사회의 지배세력이 된 것은 17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조선전기에는 아전이나 서리, 혹은 이족이라 불리는 향리집단이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실세가 될 수 있었다. 건국공신이었던 정도전도 향리집안 출신이었고 이황의 조상들도 고려말까지 향리계층이었다. 조선후기에는 사족의 명부라고 할 수 있는 향안에 보통 집안좋은 선비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1530년 안동지방의 향안에는 향리와 서얼의 자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향리집단과 같은 토호세력을 물리치고 유림이 향촌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은 서원과 향약을 통해서이다. 16세기 전반에 거듭되는 사화를 겪으며 많은 재경유학자들은 중앙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포기하고 지방에 내려가 서원을 설립하고 향약을 실시하며 백성을 교화하는 활동에 집중하였다. 서원은 유학 중에서도 성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고 유학을 가르치는 사설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지방관의 협조와 물질적 지원이 있었으며 지방의 유지와 유림으로부터 토지와 노비를 기증받아 설립되었다. 서원과 함께 향약도 17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향촌에 도입되었다. 향약은 농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유교적 예와 덕행을 실천하고 상부상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향촌규약이었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부모에 불효한 행위, 형제 간에 다투는 행위 등 효제의 도덕률을 어기는 자를 자체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명시하였다. 

유학자들은 서원과 향교를 출입하며 여러가지 이슈에 대하여 지역사회의 공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서원과 향교, 그리고 문중은 서로 통문을 돌림으로써 특정 사안에 대하여 다른 지역의 유림과 연대하여 지지 혹은 반대 세력을 동원하였고 촌락의 범위를 벗어나는 상부상조의 관계망을 형성하였다.  통문은 서원, 향교, 문중 등의 단체에서 관계인원 등에게 공동으로 관계된 일을 알리는 문서이다(김광억 2004 관계의 망과 문화공동체 282). 안동의 의성김씨 문중에 보관되어온 통문을 분석한 연구(전게서 279-281)에 따르면 문중의 뛰어난 유학자였던 표은 김시온을 제향하기 위한 사당을 도연서원에 건립하는 건에 대하여 경주옥산서원에서 유생 85명이 연명하여 사당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통문을 돌려 발의했고 이에 안동지역의 많은 서원과 서당들이 지지하는 통문을 보냈다.  유림의 지지를 확인한 후 의성김씨 문중은 문중의 지파들과 유력집안 들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사당건립에 착수하였다. 

관련된 통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후기 양반가문의 조상이 얼마나 훌륭한지 보여주는 여러가지 지표들, 즉 불천위 획득, 사당과 사우, 그리고 서원의 건립, 서원배향, 문집발간 등이 당사자들이 사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가 개입되는 공동체의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언급한 표은 김시온이 국가로부터 표창을 받는 일도 지역의 향교와 서원에서 통문을 보내어 지지하였고, 서원에 그에게 제사를 지낼 사당을 짓는 공사에는 의성김씨 문중의 노비 뿐만 아니라 인근 백성들까지 동원되었다.  공사가 시작되면서 단계 단계마다 유림은 고유제(신령에게 사유를 고하는 제사)와 같은 유교적 의례를 행하였고 관련된 서원들은 수없이 준비모임과 도회, 향회 등을 소집하여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하였다(전게서 282). 문집발간도 글을 남긴 조상이 뛰어난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적출판이 상업화되지 않았던 시대에 문중 내외 학자들이 유고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하고 목판을 새기는 작업 또한 많은 경비가 드는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문집을 간행할 때에는 지역의 유림공동체에 축하와 지원을 기대하는 통문을 돌려 문집간행을 널리 알림으로써 유림으로부터 공인을 받고자 했다.  그리고 유림의 공론을 통하여 문중은 도덕적 우월성을 확고히 다지게 된다.   

🔺 김은희 교수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일제시대의 가족변화에 관한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From Gentry to the Middle Class: The Transformation of Family, Community, and Gender in Korea”(박사학위논문), 「도시 중산층의 핵가족화와 가족 내 위계관계 변형의 문화적 분석」(『한국문화인류학』, 1995), 「문화적 관념체로서의 가족: 한국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한국문화인류학』, 1995), “‘Home is a Place to Rest’: Constructing the Meanings of Work, Family and Gender in the Korean Middle Class”(Korea Journal, 1998), “Mothers and Sons in Modern Korea”(Korea Journal, 2001), 「대가족 속의 아이들: 일제시대 중상류층의 아동기」(『가족과 문화』, 2007) “도시 중산층 기혼여성의 취업과 부부 역할:’자기 일’의 정치학”등이 있다.

🔺 실린 김은희 교수의 글의 저작권은 전적으로 김은희 교수에게 있습니다. 무단전재는 저작권법에 위배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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