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개월을 넘어가면서 미국과 유럽국들이 러시아를 고립, 약화시키는 장기 전략을 검토중이라고 미 워싱턴포스트(WP)가 16일 보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미 국무부와 국방부 및 여러 부서에서 대러 정책을 국방과 금융, 교역, 국제외교 등 모든 면에서 대응하는 청사진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권좌에 있어선 안된다”고 말하는 등 전쟁을 일으킨 푸틴에 모든 분노가 집중되고 있다. 한 EU 외교관은 “정권 교체를 주장하진 않지만 푸틴이 지금처럼 행동하는 한 안정적인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방이 마련중인 새 전략은 푸틴에만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우선 당초 거의 전적으로 중국에 집중키로 한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국방부가 지난달 비공개로 의회에 제공한 새 안보전략은 중국의 위협과 함께 “유럽에서 러시아의 도전”이라는 짧은 보고서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또 러시아와 “진정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모색한 2010년 이래 NATO의 제1전략개념 문서의 개정판이 오는 6월 회원국 정상회담에 제시될 예정이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NATO 사무총장은 이달초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러시아와 의미있는 대화를 모색해왔지만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EU는 올 연말까지 러시아에 대한 천연가스 의존을 3분의 2가량 감축할 예정이며 2030년까지 모든 화석연료 수입을 중단할 계획이다.
보케 획스트라 네덜란드 외무장관은 지난 14일 미 국제전략연구소(CSIS) 포럼에서 “반드시 제재를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배출가스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선 러시아 천연가스와 석유로부터 확고히 독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몇달 또는 몇년이 걸리는 나라들이 있을 것이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국가들은 앞으로 국방비를 큰 폭으로 증액하겠다고 발표했으며 핀란드와 스웨덴은 오는 6월 마드리드 NATO 정상회담 이전에 가입을 신청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럽의 안보균형은 동맹국들의 러시아주변 군사적 대응이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일주일 전 러시아와 정상적 교역을 중단하고 러시아 석유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지난 주 유엔 총회는 러시아의 유엔인권위원회(UNHCR) 회원국 자격을 정지하기로 표결했으며 러시아의 유엔 회원국 및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격을 재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료 시점을 전망하는 서방 지도자들은 거의 없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러시아주재 대사와 국방부 고위당국는 새로운 제안들의 많은 대목이 “전쟁이 언제 끝날 지를 알지 못하면 확정될 수 없다. 전쟁이 끝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온전치 못한 휴전으로 몇년 동안 질질 끌 것인가”라고 말했다.
#NATO leaders agreed that we must and will provide further support to #Ukraine 🇺🇦#NATOSummit pic.twitter.com/A7hgEYpJsO
— NATO (@NATO) March 25, 2022
그러나 새로운 장기 전략은 동맹국들이 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늘리며 NATO군을 러시아 접경 동유럽 각국에 추가배치하는 등으로 이미 실행되고 있다. 이들 조치가 영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고 미국의 고위 외교당국자들도 확인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최종적으로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된 우크라이나와 고립되고 약해진 러시아, 더 단합되고 단호한 서방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가지 목표 모두 가시화되고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소련 시절의 “억제” 정책으로 회귀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으나 우크라이나 위기는 미국이 많은 비용을 들여 홀로 자유세계를 수호해야 하는 책임을 줄일 기회가 되고 있다.
역사가 스티븐 워테임은 이달 포린어페어즈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전쟁으로 전략 고수 입장이 강화됨으로써 유럽이 러시아에 대적하도록 하는 한편 미국이 아시아 안보와 국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선이 진행중인 프랑스의 경우 마린 르펭 야당 후보가 NATO와 러시아가 화해해야 하며 프랑스가 NATO의 지휘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도 러시아와 화해를 위해 대화의 기회를 열어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미국의 경우 새로운 정책을 양당 모두 지지하고 있다. NATO를 경시해온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과 달리 공화당의 NATO를 경원하던 입장도 바뀌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국방비 증가에 대한 반대의견도 증가할 수 있으며 핵비확산과 같은 문제로 러시아와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며 중국에 대한 집중력이 약해지는데 대한 비난과 교역 축소로 인한 물가상승 등의 이유로 이견이 불가피하게 제기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폴란드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 전쟁은 장기 여정이다. 우리는 오늘과 내일, 모레, 몇년, 몇 십년 동안 단결돼야 한다. 쉽지 않으며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NATO 회원국 정상들은 1997년 러시아와 “상호관계, 협력 및 안보에 관한 기본 협약”을 비준했다. 러시아와의 상호의존을 모색하는 이 기본협약은 NATO가 러시아 접경지역에 “상당 규모의 전투 병력”을 추가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이후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동부 침공 등 이 약속을 위태롭게 하는 사건들이 벌어졌으나 미구과 유럽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이나 푸틴에 대한 기대감 속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지난달 NATO 비상정상회의에서 새로운 안보현실에 따라 정상들이 동부에 더많은 군대와 전투기, 함정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기본 협약을 “파기 했으며 더이상 협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 정책 입안가들은 두가지 주요 변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는 어떤 식이든 잠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푸틴은 언제라도 준비가 되면 다시 침공할 것이라는 점과 러시아군의 민간을 상대로 한 잔혹행위다. 이에 따라 푸틴이 권좌에 있는 한 유럽 대륙이 불안정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비록 정권교체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는 않더라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영구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미국은 물론 유럽 각국에서 대두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는 점도 동맹국들의 정책 입안자들이 장기적 대립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