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처리를 위해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킨 것이 거센 역풍을 맞아 검수완박 처리 강행 동력이 약화하는 모양새다.
당내 소신파인 이상민, 조응천 의원에 이어 소신파 박용진 의원과 이재명 전 대선 후보 측 김병욱, 이소영 의원이 가세하며 검수완박 강행에 대한 당내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문턱을 넘기 위한 초유의 ‘위장 무소속’ 전략에 비판을 쏟아냈다.
당 내에서 공개 반발이 터져나온 것은 6·1 지방선거에 대한 위기감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불과 한달 후 치러지는 지선에서 ‘정권 견제’ 표심을 호소해야 할 마당에 입법 독주 프레임으로 중도층마저 돌아설 경우 ‘전(前) 정권 심판 선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할 경우 이를 종료할 180석 확보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민주당으로선 결국 박병석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만 바라보게 된 형국이다.
이 전 후보의 측근인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전날 탈당한 민형배 의원에 대해 “그동안 우리 당이 비판받아 온 내로남불 정치, 기득권 정치, 꼼수 정치 등 모든 비판을 함축하는 부적절한 행위”라며 “이런 식으론 결코 검찰개혁을 이룰 수 없으며 우리 당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숭고한 민주주의 가치를 능멸할 뿐”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그는 “현재 부동산 세금 문제, 물가 인상, 코로나 대책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며 “그런데 ‘민생’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할 시기임에도 온통 검찰 이슈만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우리 당의 문제가 무엇인지 시간을 갖고 숙고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소영 비대위원도 당 소속 의원들에게 친전을 보내 “수사기소 분리라는 법안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편법을 동원하고 국회법 취지를 훼손하면서까지 강행하는 지금의 상황은 2년 전 위성장당 창당 때와 다르지 않는다. 국민들에게 이게 옳은 일이라고 설명할 자신이 없다”며 “나는 이런 법안처리 방식에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재고를 촉구했다.
박용진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서 “바둑 격언에 묘수 3번이면 진다는 말이 있다. 비상식이 1번이면 묘수지만, 반복되는 비상식은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처음에 정의당을 끌어들이려다 실패하고, 양향자 의원을 사보임했지만 실패하니, 이제는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 단계를 통과하려 한다. 묘수가 아니라 꼼수”라고 힐난했다.
검수완박 강행 처리 입장문을 작성했던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강경파 모 의원은 특히나 (검수완박 안 하면) 죽는다고 했다. 다른 분한테서는 ‘검수완박을 처리하지 않으면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이 감옥 갈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고 폭로하기까지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인 조응천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민 의원 탈당에 대해 “사실 국민들의 시선이 두렵다”며 “위성정당에 대해서 대선 기간 중에 이재명 후보가 몇 번 사과하고 반성했지 않나. 그런데 얼마 됐다고 또 이런 탈당까지 무리수를 이렇게 감행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조 비대위원은 “국민들은 코로나19뿐만 아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서 경제위기, 환율, 금리, 원자재 값 폭등 (민생고가 있는데)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지 않나. 그런데 그게 해결됐느냐”며 “거기다가 윤석열 당선인 쪽 인수위가 지금 5년간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겠다고 청사진 내놓고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인사가 참 여러 가지 지금 문제가 많은데 과연 (검수완박) 이게 이렇게 치열하고 절박한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민 의원 탈당을 통한 안건조정위 무력화가 결국 민주당의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소속 의원 172명 전원의 공동 발의로 수사권 분리를 위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가운데 범여권 무소속 5석과 시대전환·기본소득당 등 소수정당 2석, 정의당 6석 중 이탈표를 끌어모아야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편법 탈당’ 논란으로 명분이 흔들리게 돼서다.
결국 필리버스터 종결을 위해선 2~3일짜리 초단기 임시회를 연달아 여는 ‘살라미 전술’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어지면서 박병석 국회의장의 협조가 절실해진 상황이나, ‘편법 탈당’까지 나온 와중에 의회주의자인 박 의장이 과연 직권상정을 해줄 지는 미지수다.
조 비대위원은 박 의장이 민주당 손을 들어주리라는 관측에 대해 “그렇게까지 의장님께서 하실까”라며 “왜냐하면 의장님은 이제 사실상 당신의 정치 역정을 이번에 마무리하시는 건데”라고 유보적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직권상정을 그냥은 안 해주실 것 같고, 아마 여야 양쪽을 계속 불러서 ‘서로 양보안 갖고 와라’ (중재를) 그걸 계속 하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박홍근 원내대표는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의장 중재안 수용 의사를 재확인하며 “박 의장께서도 이 현안을 빗겨갈 수 없고, 민주당이 어떤 절박함을 가지고 이 문제를 다루는지 알고 계시기 때문에 국회의원 다수가 현재 안보다 진전된 안을 낼 경우 그걸 마냥 빗겨가시진 않을 것”이라며 협조를 기대했다.
한 중진 의원은 뉴시스에 “여기서 물러서면 죽는다고들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무리하고 있다”며 “원내 전략도, 지방선거 대책도 영 이상한 흐름으로 가고 있어서 선거에도 좋지 않겠지만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무력감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