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의 한인 CEO 이규성(58)씨가 70대 창업자그룹과의 갈등 끝에 갑작스럽게 사임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9일 보도했다.
이달초 이계성씨는 이사 2명과 화상통화에서 70대의 칼라일 그룹 창업자들이 회사 경영에 적극 개입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이씨는 “인생은 짧다”고 답했고 이틀 뒤 사임했다. 이씨는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자의로 물러났다.
이씨가 사임한 배경은 3명의 창업자들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진 뒤 갈등을 빚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칼라일 그룹에 세대간 힘겨루기가 있음을 보여준다.
칼라일, 블랙스톤, KKR 등 상장돼 있는 사모펀드들은 최근 10여년 동안 경영진을 젊은 세대로 교체하는 것을 통해 회사가 소수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미지를 쇄신하려 해왔다. 그러나 칼라일의 갈등 사례에서 보듯 창업자들이 지배권을 회복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음을 보여준다.
칼라일 그룹 등 사모펀드들은 미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규모가 커지면서 JP모건과 골드먼 삭스 등 대형은행과 경쟁할 정도가 되면서 당국의 규제도 강화돼 왔다. 따라서 이번 경영진 밀어내기는 주목할 만한 변화다.
사모펀드들은 경찰, 교사, 기타 근로자 연금 등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으고 막대한 돈을 빌려 식당 체인, 호텔, 양로원, 유료도로, 제조업 등 수많은 회사들을 사들이고 월가 금융 업무에도 다양하게 진출해왔다.
사모펀드들이 보유한 회사에 고용된 미국 근로자들은 1200만명에 달해 미 전체 노동인구의 7%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다. 이달에도 사모펀드들이 인플레이션감축법에서 사모펀드 경영자들에 대한 세금혜택을 줄이기 위한 조항을 삭제하도록 의원들을 압박했었다.
사모펀드의 최고 경영자들은 JP모건 은행장 제이미 다이먼 등 대형은행 CEO보다 훨씬 많은 보수를 받고 있다. 연초 이씨는 5년 동안의 보수로 3억달러 받는 협상을 했었다.
지난해 KKR은 최고 경영자 2명에게 향후 5년 동안 각각 최대 5억달러을 보수로 지급하기로 했으며 블랙스톤은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스티븐 슈워츠먼에게 5억달러 가까이 지급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은 다이먼 은행장에게 5년 동안 2억달러를 지급했다.
최근 몇 년 새 사모펀드들은 젊은 세대로 경영권을 넘기는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창업자들이 CEO직을 유지하거나 이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함으로써 젊은 지도자의 권한과 자율성을 제약한다는 의심을 사왔다.
사모펀드 전문가인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법학교수 빅터 플레이셔는 “사모펀드가 가진 힘과 미 정부에 대한 영향력, 확고한 지위 구축 등을 감안할 때 다소 놀라운 일이다. 여러 면에서 여전히 1세대들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칼라일 대변인 레이 패리스는 “회사가 이사회가 승인한 경영 비전과 전략에 따라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새로운 CEO를 찾는 작업이 진행중이며 회사의 힘을 강화해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계속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칼라일 그룹은 1987년 윌리엄 콘웨이,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대니얼 다니엘로가 공동 설립했다. 방위산업 분야에 투자해 큰 돈을 벌었다.
칼라일 그룹이 유명해진 것은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는 점 때문이다. 칼라일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존 메이저 영국 총리,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등을 채용했었다.
칼라일의 세 공동창업자들은 억만장자가 됐다. 루벤스타인은 세계 지도자들의 회의를 주재하고 대통령과 상원의원들에게 조언한다. 다른 거대 사모펀드 창업들처럼 루벤스타인도 그의 이름이 워싱턴과 뉴욕의 회사 건물 및 그가 졸업한 듀크대의 명판에 새겨져 있다. 10여개의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워싱턴 기념탑 복원을 위해 750만달러를, 국립문서보관서가 1297년의 영국 마그나카르타(대헌장) 문서를 사들이도록 2130만달러를 기부했다.
루벤스타인과 콘웨이, 다니엘로 등 공동창업자들은 각종 위원회에 관여하고 있다. 예컨대 경영자 임금 책정위원회 의장 앤토니 웰터스는 케네디 센터의 부의장이다. 의장은 루벤스타인이다.
이씨는 이에 비해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이민한 부모의 자식으로 뉴욕주 알바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교수와 유엔 직원으로 일했다. 그는 뉴욕 북부와 한국, 싱가포르 등에서 생활했고 하버드대학교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서 잠시 일한 뒤 사모펀드 워버그 핀커스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20년 근무한 이씨는 2013년 칼라일에 합류했고 창업자들이 일선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면서 그룹을 장악할 선두 주자로 꼽혔다.
2017년 이씨는 칼라일에서 22년 근무한 글렌 영킨과 함께 공동 CEO로 지명됐다. 당시 공동 창업자들은 이씨에 대해 “과단성 있는 지도자이자 성공적 투자자이며 사업의 전략 수립자이자 창의적 문제 해결사”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창업자들은 이사회에 계속 남았고 자신들의 지분을 토대로 지배권을 행사했으며 상대적으로 재임기간이 짧은 이씨는 영킨 CEO에 비해 회사내 신뢰도가 약했다.
2020년 9월 영킨이 물러나 버지니아 주지사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이씨가 단독 CEO가 됐다.
이씨는 칼라일을 구식 인수합병(M&A) 회사 이상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가속화하면서 보험, 대출, 개인기술회사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성과를 내긴 했지만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현재 칼라일의 운영자산은 3760억달러이다. 이는 2017년말 대비 93% 늘어난 것이지만 블랙스톤과 KKR은 그보다 더 성장했다. 칼라일 주식은 2017년말 대비 70% 올라 KKR과 블랙스톤보다 상승폭이 크게 작다.
그러나 이씨에 대한 회사내 지지도는 높았다. 일부 경영진들은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여성과 유색인들에게 더 큰 역할을 맡기는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에 따라 적어도 최근까지 공동창업자들을 포함한 이사회는 이씨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2월 이사회가 이씨가 계속 일하는 조건으로 칼라일 주식 6000만달러을 지급했다. 올해 봄 이씨는 회사의 인력관리 담당 부서 및 외부 임금 컨설팅 관계자들과 5년 동안 최대 3억달러의 보수 지급 협상을 시작했다. 이 액수는 기업 CEO 보수 중 최고 수준이다.
지난 4월 이씨가 공동창업자 및 고위 경영진들과 함께 뉴욕 센트럴파크가 보이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다음날과 7월에도 이사회가 예정돼 있었으며 회사 고위직들은 이씨가 회사를 여러모로 발전시킨 것을 치하했다. 지난달 이사중 한사람이 그에게 2분기 실적이 뛰어난 것을 축하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에 대한 불만도 함께 커지고 있었다.
이씨는 연금 펀드 등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오랜 경영자들을 불편하게 했다. 이씨는 이들의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수백만달러의 보수를 지급하는데 반대해 몇 사람이 회사를 떠났다.
또 이씨와 일부 경영진들은 루벤스타인 창업자의 가족회사가 개인자금 수백만달러를 투자하는 것이 직원들이 공정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느꼈다.
지난 6월 칼라일 경영진과 직원들이 맨해튼에서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주최로 열린 저녁 모임에 이씨와 다른 경영진들이 여러 테이블을 구매해 직원들 여럿을 참석시켰다.
이씨는 이 자리에서 자신 이전의 회사 경영을 비판하는 듯했다. 한 때 최고 수준이었던 칼라일이 너무 신중하고 느려서 뒤쳐졌다고 개탄했다. 참석자들 일부는 공동창업자들을 의식해 그의 비판에 한 발 물러섰다. 창업자들은 고위 경영진들과 매주 통화했고 신규투자를 평가하는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씨는 종종 동료들에게 루벤스타인이 칼라일의 얼굴로 활동하는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지난 5일 운명의 화상통화가 이뤄졌다. 칼라일 공동창업자중 한 사람인 콘웨이와 케네디센터 책임자 웰터스가 참석했다. 두 사람이 이씨에게 공동창업자 3명이 회사의 전략에 더 많이 관여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씨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회사를 떠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틀 뒤 칼라일이 이씨의 사임을 발표했고 주가가 폭락해 회사가치가 20억달러 가량 줄었다. 이씨는 사임하면서 퇴직금으로 1억6000만달러 상당의 회사 주식을 받았다.
칼라일 그룹은 이씨가 사임한 뒤에야 후임자를 모색하기 위해 경영자 채용 대행사와 계약했다. 콘웨이 공동 창업자가 이씨를 대신해 임시 CEO직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