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러 출신으로 일본 참의원까지 지낸 안토니오 이노키가 사망했다. 향년 79세.
스포니치 등 일본의 스포츠 일간지는 1일 일제히 이노키가 집에서 저혈당이 악화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이노키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5세 때 아버지를 잃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가업이 도산한 이후 브라질로 건너가 커피 농장 등에서 일했다. 그러나 브라질 현지에서 투포환 선수로 활동하다가 때마침 브라질을 방문했던 리키도잔(역도산)의 눈에 띄어 스카우트됐다.
이노키는 순수 일본인이었지만 일본계 브라질인이라는 컨셉으로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1962년부터 링네임으로 쓰기 시작한 안토니오 이노키 역시 브라질인 이미지를 위해 붙여졌다.
결국 이노키는 지난 1960년 9월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프로레슬링에 데뷔했고 김일(당시 링네임 오오키 긴타로)과 경기를 벌였다.
이후 이노키는 1972년 신일본프로레슬링을 출범시키며 일본의 프로레슬링 전성기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1976년에는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대결을 펼쳐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또 이노키는 지난 1995년 평양에서 릭 플레어와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이노키는 정치가로서도 성공했다. 1989년 스포츠평화당 총수로 참의원에 당선돼 일본에서 처음으로 프로레슬러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1998년 프로레슬러 현역 은퇴와 함께 정계에서도 물러났지만 2013년 일본 유신회 소속으로 참의원 선거에 출마, 당선되기도 했다. 2013년 참의원 당선 이후에는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노키는 지난해 전신성 아밀로이드라는 난치병에 걸렸다. 전신성 아밀로이드는 심장에 아밀로이드라는 돌연변이성 단백질 섬유막이 생겨 기능 저하로 전신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희귀성 난치병이다.
2, 3일 전부터는 저혈당으로 인해 자택에서 요양하고 있었고 결국 1일 새벽 상태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