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좋아해 자주 놀러 가던 헤밍웨이는 잘 알고 지내던 그곳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테스에게서 그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듣고는 이를 모티브로 해 수도 아바나에 7년여를 머물면서 소설을 썼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이나 아무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음날 이른 아침 작은 고깃배로 다시 바다로 나간다. 점심때쯤 대어(大魚) 한마리가 낚시에 걸린다. 하지만 배보다도 더 큰 물고기를 잡아올리기에는 노인의 힘은 적고 그 물고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지만 역부족이다.
노인은 배 안에 쓰러지고 눈이 찢어져 피를 흘리기도 하며 물고기에 끌려가는 등 사흘간의 사투 끝에 잡아 배 옆에 묶는다. 하지만 피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상어들과의 또 다른 사투를 치르지만 결국 물고기의 살점은 다 떨어져 나가고 뼈만 앙상하게 남긴 채 집으로 돌아와 지쳐 쓰러진다. 그럼에도 또 다시 고기잡이에 나설 것을 다짐한다.
헤밍웨이는 산티아고를 통해 우리에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이는 어둠이 짙을 수록 새벽이 더 가깝다는 믿음과 삶의 무게가 더해지고 사는 것이 고달플수록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메세지다.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산이나 바다로 달려 나가고 새마음으로 각오를 다지는 것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즉, 희망 때문일 게다.
헌데 그런 희망이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히스테리아 시베리아나’ 얘기가 나온다.
시베리아 농부들이 걸린다는 병이다. 농부가 사방 끝이 보이지 않는 적막한 벌판에서 동쪽에서 해가 뜨면 밭을 갈고 서쪽으로 해가 기울면 집으로 돌아오기를 날마다 똑같이 반복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괭이를 팽개치고 하염없이 서쪽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걷다가 멈추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는 얘기다.
농부가 견뎌내지 못한 것, 지겹게 되풀이되는 일상 때문이었을 게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날들을 멈출 수 있도록 큰 획을 그어 주는 새해가 없다면 이 죽음의 병은 비단 시베리아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새해가 되어 새로 꿈꾸고 새로 시작한다는 건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새해가 되면 해와 달과 날이 새로 시작한다 해서 삼시(三始)라고 한다. 해서 우리는 새해마다 새로운 각오를 작심하지만 곧 다시 무너지고 하기를 거듭한다.
너무 거창한 소망이다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허니 행복은 하루하루 일어나는 작은 일에서 쌓인다는 소박한 생각이 오히려 더 나은 게 아닐는지.
마치 가자지구의 일곱살 난 소녀가 ‘새해엔 감자칩과 딸기주스를 먹고 싶다’고 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그러고보니 시인 김종길의 시가 무척이나 포근하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라는 노래 말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은 서로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인사한다고 한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가는 길에 행운이 깃들라’는 축원이다.
여러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모두의 꿈이 이뤄지는 2024년이 되시기를….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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