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페르시아 왕에게 감시당하던 그리스의 참주가 내보낸 비밀 지령 방법이었다. 믿을만한 노예의 머리카락을 모두 깎아내고 두피 위에 직접 지령을 문신으로 새겼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 뒤, 그 노예는 평범한 여행자로 위장해 밀레투스로 건너갔다.
이것이 기록상 최초의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정보의 존재 자체를 숨기는 기술이었다. 그 무렵, 중국에서는 손자(孫子)가 전쟁의 본질을 체계화하고 있었다. ‘손자병법’ 마지막 편에서 그는 간첩을 다섯 종류로 분류했다. 적의 내부 사정을 아는 향간(鄕間), 적의 관리를 포섭하는 내간(內間), 이중 스파이를 활용하는 반간(反間), 적지에 침투하는 사간(死間), 그리고 살아 돌아오는 생간(生間). 이 분류는 냉전 시대, 첩보 교과서에도 거의 그대로 인용됐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정보라는 것. 이 명제를 손자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체계화했다.
근대에 들어 첩보전은 조직화되고 기계화되었다. 1차 세게대전 때,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은 멕시코에 비밀 전문을 보냈다. 미국이 참전할 경우, 멕시코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를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문은 영국 해군 정보부에 의해 해독되어 미국에 전달되었고 미국은 연합국 편으로 독일에 맞서 1차 대전에 참전했다. 헌데 실제로 멕시코는 이 제안을 거절했고 위 3개주는 그대로 미국 영토로 남게 되었다. 치머만의 계략은 오히려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역효과만 낳은 셈이었다. 암호 하나가 전쟁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의 에니그마(Enigma) 암호 기계가 등장했다. 암호를 풀 키 조합의 경우의 수가 무려 10의 23승에 달하던 이 기계를 영국의 앨런 튜링 팀이 풀어냈다. 해서 연합군은 독일의 작전을 실시간으로 읽어 낼 수 있었다.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KGB는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스파이를 심어 핵 기술을 탈취함으로써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핵폭탄을 개발했다.
이제 오늘날 첩보전의 지형은 디지털 혁명과 함께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2010년, 미국과 이스라엘이 만든 사이버 무기 스턱스넷(Stuxnet)은 물리적 공격 없이도 이란 핵시설의 원심분리기를 파괴했다. 2013년 스노든의 폭로는 동맹국 정상들의 전화도 감청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어 2020년 솔라윈즈(SolarWinds) 해킹은 소프트웨어 공급망 자체를 장악하는 방식으로 미국 정부 기관 수십 곳에 침투했다. 그것도 수개월 동안 아무도 모른 채.
지난 주, 2026년 미중 정상회담이 끝났다. 악수가 오가고, 공동 성명이 낭독되고, 화기애애한 만찬 사진이 세계에 퍼졌다. 헌데 미국 측 수행단은 에어포스원이 이륙하기 직전 중국으로부터 받은 선물과 물건 일체를 활주로에 남겨두고 탑승했다. 화려한 외교의 무대 뒤편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대화가 조용히 오간 셈이다.
기술은 바뀌었다. 두피 문신이 에니그마가 되고, 에니그마가 사이버 무기가 되었다.
그러나 게임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스 참주가 노예의 두피를 바라보던 불안한 눈길과 미국 보안 요원이 중국 선물을 모두 버리는 행동 사이에는 기술의 간극만 있을 뿐 그 본질은 같은 것이다. 정상들이 악수를 나누는 동안, 그 뒤에서는 2,500년 된 이 게임이 조용히 이루어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외교의 테이블 위에 놓인 선물은 때로 가장 정중한 형태의 무기이고 다시 버려진 선물들은 그 게임의 가장 솔직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정보 우위가 곧 승리다’라는 손자의 말은 어쩌면 인류가 문명을 가진 이상 결코 폐기될 수 없는 제일의 명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