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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 약자의 기적, 강자의 눈물 …월드컵이 다시 증명한 축구의 힘

2026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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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니스트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인간적인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 서울보다 작은 카리브해 섬나라 퀴라소와 아프리카 대륙 서쪽 대서양에 있는 섬나라 카보베르데가 보여준 장면들이 그것이다.
1986년 FIFA 가입 이후 40년 넘게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카보베르데가 사상 첫 본선행을 따냈다. 유럽 빅리그 스타 한 명 없는 무명 선수들의 조직력만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그 저력으로 랭킹 67위의 이 팀은 본선에서 랭킹 2위 스페인을 상대로 0대0 무승부를 만들어낸 거다.

한편 불과 인구 15만 명의 퀴라소의 사연은 결과만 보면 씁쓸할지도 모른다. 독일에 1대7로 대패했다. 하지만 팬들은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온 것 자체가 승리’라며 국기를 흔들고 춤을 췄다. 한 나라의 속령이 본선에 진출한 88년 만에 두 번째 사례였던 거다. 마침 월드컵 벤치에서 이 작은 나라의 깃발을 들어준 아드보카트 감독은 20년 전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던 감독이었다.

약소국의 기적을 말할 때 아메리칸사모아도 빠질 수 없다. 2001년 호주에 0대31로 대패해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국가대표팀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을 세웠던 이 팀은, 13년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끝에 2014년 통가를 상대로 2대1 승리를 거두며 마침내 첫 승을 신고했던 적이 있다. 이 도전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공이 늘 이러한 기적과 희망만 실어 나르는 것은 아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콜롬비아의 에스코바르는 상대 크로스를 걷어내려다 자책골을 넣는 바람에 우승 후보로 꼽혔던 그 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콜롬비아 최대 마약 범죄조직의 도박 자금이 얽혀 있던 그 시절, 그는 죄책감에 홀로 귀국한 지 열흘 뒤 총탄에 맞아 27세에 세상을 떠났다. 범인들은 총을 쏘며 매 발마다 ‘골’이라 외쳤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12만 명이 모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자살골’이라는 말은 ‘자책골’로 바뀌었다.

비극이 한 사람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월드컵 예선에서 맞붙었다. 이미 국경과 이주민 문제로 갈등이 누적돼 있던 두 나라는 경기 패배로 격해진 감정을 못 이기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실제 전쟁에 돌입했다. 닷새간 이어진 이른바 ‘축구 전쟁’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공 하나가 원인은 아니었지만, 겹겹이 쌓였던 갈등에 불을 붙인 도화선이었다.

전통적인 축구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오각형의 검은 조각과 정육각형의 흰 조각이 맞물려 있다. 육각형만으로는 평평한 판이 될 뿐 둥글게 휘어지지 않는다. 해서 모자라는 각도만큼 표면을 안으로 오므려 곡률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오각형, 그 이질적인 조각의 몫이다.

어쩌면 축구라는 종목도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는지. 카보베르데의 무실점과 퀴라소 국민들의 함성 같은 흰 조각들 사이로 에스코바르의 죽음과 한 나라의 전쟁 같은 검은 조각들이 끼어들면서 비로소 둥글게 완성되는 이야기. 기쁨만으로는 평평한 자랑이 되고, 비극만으로는 차가운 기록이 될 뿐일 그 자리에 둘이 서로 맞물림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둥근 무언가가 태어나는 걸게다.

해서 약자의 축구는 늘 더 절박하면서도 더 아름답다. 돈도, 인프라도 없는 나라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90분과 같은 크기의 잔디, 같은 규칙뿐이다. 그 평등한 시간 안에서 인구 15만의 작은 섬은 우승후보의 발목을 잡아보고, 13년간 패배만 거듭했던 아메리칸사모아는 단 한 번의 승리에 모든 것을 거는 거다.
그리고 그 꿈이 가끔 비극으로 끝나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 게임이 가짜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권력과 재력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둥근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는 생애 단 한 번의 환호를 얻고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럼에도 그 모순을 끌어안은 채로 사람들이 4년마다 다시 TV 화면 앞에 모이는 것은 결국 그 안에 우리 각자의 삶이 닮긴 작은 조각 하나씩이 들어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칼럼 [김학천 타임스케치] 원자소년 아톰, 그리고 어둠 속 ‘긴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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