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사면 “시기상조”→”국민 공감대”→”통합 절실”
문 대통령, 전직 대통령 특별사면 관련 입장 변화 추이
‘국민 공감대’ 이전보다 높아져…국민통합 계기도 희망
“선거 관련 없다” 선그었지만…대선 정국 격랑 속으로
“5대 중대범죄 사면 안한다” 공약 파기 설명 필요할듯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전격 단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면에 대해 언급할 시기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국민 공감대와 통합 등을 고려해 오랜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선을 75일 앞둔 상황에서 사면이 단행되면서 정치적 후폭풍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선거는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지난 대선 당시 5대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던 공약을 스스로 파기한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의 2022년 신년 특별사면·복권 단행 발표 뒤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지난 시대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가야 한다”며 “이제 과거에 매몰돼 서로 다투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박 전 대통령의 특별 사면 배경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특히 우리 앞에 닥친 숱한 난제들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경우 5년 가까이 복역한 탓에 건강 상태가 많이 나빠진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면에 반대한 사람들의 넓은 이해와 해량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만 해도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이다”고 밝혔었다. 국정농단 피해가 막심한 만큼 국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이상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시기 상조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두 분 모두 연세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다라는 말도 있어서 아주 걱정이 많이 된다”면서도 “엄청난 국정농단 그리고 권력형비리가 사실로 확인됐고, 국정농단이나 권력형비리로 국가적 피해가 막심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전제는 국민들에게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사면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 사면이 통합의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면을 둘러싸고 또다시 극심한 국론의 분열이 있다면, 그것은 통합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통합을 해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당시에도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것과 또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사면권도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마음대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절차와 원칙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공감대에 토대하지 않는, 그런 대통령의 일방적인 사면권 행사 이런 것은 지금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못박았다.
이후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청와대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의 적진 대통령 사면 건의에 대해서도 “두 분 다 고령이시고 건강도 안 좋다고 해서 안타깝다”면서도 “국민 공감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작용돼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5월에 열린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역시 “전임 대통령 두 분이 지금 수감 중이라는 사실 자체가 국가로서는 참 불행한 일이다. 안타깝다”면서도 “그것이 국민 통합에 미치는 영향도 생각하고, 또 한편으로 우리 사법의 정의, 형평성, 또 국민들 공감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이 다시 거론된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이 떠오르면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재계 4대 그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 부회장 사면 건의에 “국민들도 공감하는 분이 많다”며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고, 이에 따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도 수면 위로 올랐다.
그 뒤, 이 부회장 8·15 가석방이 현실화되면서 전직 대통령의 사면 가능성도 주목을 받았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이 부회장의 경우, 사면·가석방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두 전직 대통령은 사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광복절 사면이 언급됐지만, 청와대는 코로나 확산과 국민 통합을 고려했을 때 이르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그동안 문 대통령이 밝힌 원칙을 고려하면 이번 사면 결심은 일차적으로 ‘국민 공감대’가 이전보다는 높아졌다는 인식에서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근 여론조사 보도를 인용해 “사면 찬성에 대한 여론이 조금 올라갔다는 기사도 있었다”며 “특별히 조사를 해서 추이를 계속 살핀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은 이번 사면이 미래 지향적으로 통합에 기여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오후 KBS라디오 ‘최영일의 시사본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사면이 미래를 향해서 담대하게 힘을 합쳐야 할 현재 상황에서 하나의 계기가 되어주길 바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아직 이견이 있고 압도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국민 통합 차원에서 미래 지향적으로 사면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사면 결정과 관련, “우리는 지난 시대 아픔을 딛고 새 시대로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 통합과 겸허한 포용이 절실하다”며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의 국민 공감대에 대한 인식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여론조사에 의하면 두 분의 차이가 많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여론이 우호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단순히 여론조사 수치를 통해 결정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국민 공감대라는 잣대를 적용할 때 내용적으로 잘 따져야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임기가 5개월 정도 남은 점도 결정을 앞당긴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에) 여론조사든 민심동향이든 보고드린 바 없다”면서, 사면 단행 계기에 대해 “대통령께서 아마 계속 고심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기가 내년 5월9일까지니까 기회가 많지 않다. (대통령이) 나름 판단하셨을 것 같다”고 전했다.
다만 청와대는 이날 “분명한 건 선거 관련 고려는 일체하지 않았다. 전혀 그런 것이 고려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사면으로 당분간 대선 정국은 격랑 속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범죄에 사면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던 공약한 것을 파기하고, 원칙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약 파기 비판에 대해서 “원칙 파기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헌법에 정해진 사면권을 사면심사위원회, 국무회의, 이와 같이 정해진 절차를 걸쳐서 절제된 형태로 행사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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