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60) KBS 사장이 공영방송 신뢰도 추락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로 재정이 악화됐고, 방만경영과 콘텐츠 경쟁력 상실 등으로 위기를 맞은 지 오래다. 박 사장은 취임 이틀 만에 자진해서 “임금 30%를 삭감하겠다”며 나섰고, 구조조정까지 예고했다.
박 사장은 14일(한국시간) 서울 여의도동 KBS 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저 자신과 임원은 경영이 정상화 될 때까지 임금 30%를 삭감하겠다. 나머지 간부들도 동참하도록 할 것”이라며 “명예퇴직을 확대 실시해 역삼각형의 비효율적인 구조를 개편하겠다.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구조조정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공영방송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KBS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두겠다”며 “KBS는 지난해 수신료 7000억원을 받았지만, 방만 경영으로 100억원 적자를 냈다. 올해도 800억원 적자 예상되고 있다. 수신료 분리 징수로 과거 IMF보다 비상 상황을 맞았다. 기존 경영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는 만큼 특단의 경영에 나서겠다”고 했다.
“인사시스템을 전면 검토하겠다. 입사하면 능력과 성과 상관없이 승진하는 직원이 없도록 하겠다. 제작비 낭비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 순번식 제작 관행을 없애고 능력있는 연출자를 기용하고, 제작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 사회적 혁신을 통해 스마트하고 효율적인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다. 국민 여러분의 회초리를 맞을 각오가 돼 있다. 지금부터 변하겠다. 시청자 목소리에 귀를 활짝 열고 다가가고, 진정한 공영방송 KBS로 거듭나겠다.”
박 사장은 “주인인 국민 여러분께 그동안 KBS가 잘못한 점을 사과하고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공영방송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하고 국민 신뢰를 잃어 버려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 국민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박 사장은 전날 제26대 KBS 사장으로 취임했다. 1992년 문화일보 기자로 입사해 사회·정치부장, 편집국장 등을 거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던 2019년 법조언론인클럽 회장을 맡았다. 2019~2022년 제8대 법조언론인클럽 회장, 지난해 제69대 관훈클럽 총무 등도 지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서울대 정치학과 동문이다. 김의철 전 KBS 사장 잔여 임기인 2024년 12월9일까지 일할 계획이다.
외부 출신이 KBS 사장이 된 건 2003년 정연주 전 사장 이후 20년 만이다. 이미 김의철 사장 해임 후 내정자로 거명, 윤석열 정권 낙하산 인사 의혹을 받았다.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기자회견장 앞에서 박 사장 규탄 피켓 시위를 벌였다. 취임 첫날인 전날 1TV ‘뉴스9’ 등 주요뉴스 앵커를 대거 교체해 반발을 샀다. 이소정 앵커는 4년간 뉴스9를 진행했지만,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기자 출신 주진우도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하차 통보를 받았고, 2TV ‘더 라이브’는 이날부터 16일까지 편성표에서 통째로 빠졌다.
박 사장은 “사장으로서 특정 프로그램 개폐와 방향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며 “일부 프로그램이 공정성 관련 많은 지적을 받았고, 수신료 분리 징수를 포함해 위기를 맞았다. 본부장 인사 후 ‘제작·편성본부에서 지금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재점검, 공영방송 정체성을 상실했으면 어떻게 할지 적당한 대처를 협의해서 진행하라’고 했다. 이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정한식 보도본부장은 “새로운 사장 취임을 계기로 국민들께 새롭고 공정한 뉴스를 보여주자는 차원에서 기존 앵커를 교체했다”며 “기존 진행자에게 하차 사실을 정중하게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KBS 직원이 4100명 정도 된다. 국장급 46명, 부장 138명에 이른다. 다 능력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인사를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선 본부장 능력과 성과, 사내 안팍 평가를 중심으로 잠정적으로 정한 뒤 그분들이 전권을 가지고 국실장, 부장 인사를 하도록 했다. 실제로 각 본부 인사에 개입한 게 없다. 그렇게 인사를 해야 본부장이 책임과 지위, 권한을 가지게 된다. 내가 실제로 인사한 건 본부장급과 일부 노사 주간 뿐이다. 본부장들이 잘 했을 거라고 믿는다.”
박 사장은 방송 경험이 없는 점이 취약점으로 꼽힌다. “좋은 정통이 이어졌으면 좋았을텐데, 2008년부터 15년간 방송 경험이 있는 KBS 출신 7명이 사장을 맡았지만 이런 사태를 맞았”며 “국민 수신료 7000억원대를 받았지만, 어떠한 성장도 하지 못했다. KBS가 당면한 위기 본질은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방송 전문성은 부족하지만, 그런 원칙을 지키면서 공영방송 정체성이 확실한 분들과 의논해서 해나갈 것”이라며 “외풍을 막고 장애를 제거해서 KBS 토대를 세우겠다. 이후 전문인이 와서 미래 시장에 적응하는 방송을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간 KBS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다. 최근 1TV 대하사극 ‘고려거란전쟁’과 2TV ‘개그콘서트’ 등을 통해 KBS 정체성을 보여줬지만, 콘텐츠 경쟁력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
박 사장은 “KBS 사장 지원 후 국내 대표 엔터테인먼트 경영진을 만났다. ‘tvN은 히트 프로그램이 많은데, 왜 모기업(CJ ENM)은 굉장히 어려워 졌느냐’고 물었다. 코로나19 여파, 극장 등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그분은 ‘플랫폼과 제작, 유통을 오너가 다 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tvN이 콘텐츠 경쟁력이 강한데도 불구하고 기업이 경영 어려움을 겪는 이유”라며 ” KBS는 강력한 플랫폼이었는데, OTT가 등장하면서 그 장점이 없어졌다. KBS미디어, KBS N 등에서 제작·유통까지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덕션이나 엔테인먼트도 성공할 수 없다. 단기적으로 KBS 자체 경쟁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KBS는 제작자가 순서대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독단적으로 제작을 결정했다. 대단한 성과를 거둬도 보상을 받거나, 실패해도 제재를 받지 못했다. 훌륭한 제작자들이 회사를 빠져 나갔다. 1차적으로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 프로세서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 몬스터유니온, KBS N 등 유통·제작 플랫폼을 통합해 스튜디오 시스템을 넘어서는 시스템 구축하겠다. 이제 ‘KBS가 제작해서 KBS에서 방송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작·유통 플랫폼 경계를 완전히 벗어 던지고, 공영방송도 일정 부분 제작 영역에서 상업적인 변화를 취해야 할 것이다. 내 임기가 길지 않은데, KBS 역량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