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 폴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은 7월 4일, 빅에이 스타디움 입구에서는 자그마한 성조기가 관중들 손에 쥐어졌다. 전날엔 독립기념일 테마 에인절스 모자가 프로모션 아이템으로 풀렸고, 스타디움은 초저녁부터 축제 분위기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날 그라운드 밖 최대 이슈는 따로 있었다. 마이크 트라웃이 올 시즌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에 외야수로 다시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이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현재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지만 재활은 사실상 마무리 단계. 트라웃은 정확한 복귀 확률을 못 박진 않았지만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최근 4~5일간 통증이 없었고, 90~95% 강도로 이틀 연속 훈련만 소화하면 준비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정확한 날짜를 미리 정하는 편은 아니다. 예전에 스스로 정한 복귀 시점을 못 지킨 적이 있어서 이번엔 신중하게 가려 한다”고도 덧붙였다. 텍사스 원정(7~9일)에서의 복귀가 유력한 가운데, 인조잔디 구장 특성상 첫날은 지명타자로 나설 가능성도 열어뒀다.

올스타전이 열리는 필라델피아는 트라웃의 고향 밀빌(뉴저지)에서 40마일 거리. 그만큼 이번 올스타전은 각별하다. 자택에서 지내며 가족과 아이들이 올스타전과 홈런더비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 다만 홈런더비 참가는 시즌 후반기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 일찌감치 고사했다. 애리조나 원정 첫날 구단 관계자로부터 참가 제안을 받았지만, 그로부터 사흘 뒤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참가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이태리 출신 좌완 샘 알더게리가 마운드에 올랐다. 등번호 61번을 볼 때마다 박찬호 선수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선수를 보고 직접 고른 번호인지, 아니면 그냥 콜업 선수에게 배정되는 번호를 받은 것인지 — 경기 후 한번 물어봐야겠다. 상대 선발은 소니 그레이. ESPN 경기 예상 승률은 보스톤 61.2%, 에인절스 38.8%로 원정팀의 우세를 점쳤다.

경기 전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전날 파울팁에 마스크를 맞고 뇌진탕 검사를 받았던 로건 오하피가 다행히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됐고, 벤조이스와 기쿠치도 조만간 투구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업데이트가 이어졌다.
경기는 결국 그레이의 벽 앞에 무너졌다. 1회 초부터 알더게리의 커맨드가 흔들렸다. 볼넷으로 주자를 내보낸 뒤 콘트레라스에게 좌측 담장을 421피트 거리로 넘기는 3점 홈런을 허용하며 초반부터 3점을 내줬다. 2회 말 조시 로우가 437피트짜리 대형 솔로 홈런으로 중앙 담장을 넘기며 추격의 신호탄을 쐈지만, 3-1에서 더 이상 따라붙지 못한 게 뼈아팠다. 5회 초 아브레우의 우전 적시 2루타로 2점을 더 내준 데 이어(5-1), 곤잘레스의 좌측 2점 홈런까지 터지며(7-1) 사실상 승부가 갈렸다. 8회 초 라파엘라의 적시 2루타로 마지막 실점까지 더해지며 최종 스코어는 8-1. 그레이는 6이닝 1실점 4피안타 호투로 시즌 10승(1패)째를 챙기며 4월 14일 이후 이어온 무패 행진을 지켰다.

경기 후 만난 커트 스즈키 감독은 담담했다. “어제도 3점대 초반 투수, 오늘 소니도 3점대 초반이었다. 계획을 갖고 나가서 좋은 공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늘 좋은 공이 오는 건 아니다.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순 없다. 선수들은 계획을 갖고 나갔다고 생각한다”며 “때로는 상대 투수에게 모자를 벗어줘야 할 때도 있다”고 그레이의 완벽투를 인정했다.
알더게리에 대해선 애정 어린 시선을 보였다. 1회 실점 원인으로는 카운트 싸움에서 밀린 뒤 2-0 상황에서 나온 실투를 지목하면서도, “새미는 콜업 이후 정말 좋았다. 매번 완벽할 순 없다. 좋은 학습 경험이 될 것”이라고 다독였다. 1회 이후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점에 대해선 하이네만의 리드를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매덕스나 글래빈 같은 레전드들도 1회에 애를 먹곤 했다. 그 후 3이닝을 제로로 막아낸 건 젊은 투수에게 좋은 신호”라고 짚었다. 다만 4개의 볼넷에 대해서는 “프리패스는 늘 어렵다. 좋은 타선 상대로는 더더욱. 배우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조시 로우의 홈런에 대해서도 “정말 기쁘다. 열심히 하는 선수고 좋은 팀메이트다. AAA에서의 시간을 잘 활용해서 성장한 게 선수 본인에 대해 많은 걸 말해준다”며 따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알더게리 본인은 다소 담담하게 자신의 등판을 돌아봤다. 1회 부진의 원인을 묻자 “내일 불펜에서 캐치볼하면서 루틴을 점검해볼 생각이다. 힘들 때 보면 늘 1회였다. 루틴에 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명확한 원인보다는 “흐름을 타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는 말로 갈음했다. 볼넷 문제에 대해선 “오늘 밤 컨트롤이 정말 안 됐다. 보더라인 위주로 던지려다 너무 완벽하게 존을 공략하려 했다. 2회가 특히 길었는데, 3·4회엔 그냥 존을 공략하고 내 공을 믿었더니 더 나았다”고 돌아봤다. 콘트레라스에게 허용한 홈런에 대해서는 “공을 높게 뒀다. 대가를 치른 거다”라고 짧게 인정했다.

저녁노을이 스타디움에 스며들 무렵, 담장 밖에서는 벌써 독립기념일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경기는 완패로 끝났지만, 폭죽 소리만큼은 승패와 상관없이 끊이지 않았다.
<석승환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