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을 타격할 수 있도록 장거리 미사일 사용을 허용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러·우 전쟁이 새 국면을 맞을지 주목된다.
미·영 정상이 13일(현지시각)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해 전략적 검토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적인 참전’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한 만큼 전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우전쟁 전환점?…허용시 러시아로 전장 본격 확대될 수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5월부터 서방에 장거리 미사일 제한을 풀어달라고 강하게 요구해왔다.
서방은 당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북부 하르키우 대공습을 계기로 국경 인근 러시아 군사시설에 대해서만 ‘방어’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지만, 러시아 내륙 깊숙한 곳까지 타격하는 것은 계속 막아왔다.
그러다 최근 다시 이 논쟁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심 화두로 떠올랐다.
미·영은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러시아에 제공됐다고 주장하며 제한을 더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3번째 겨울전쟁을 앞두고 위기감이 일부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 러시아와 이란은 미사일 공급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은 지난 11일 키이우를 함께 방문,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제한 해제 요청을 신속하게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키어 스타머 정부는 이미 내부적으로 자국산 공대지 순항미사일 ‘스톰 섀도’ 미사일 사용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영국 정부 소식통은 전했다.
미국도 전술탄도미사일체계 ‘에이태큼스'(ATACMS) 공격 범위 제한 완화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밝혔고, 마이클 매콜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최근 블링컨 장관과의 대화를 토대로 한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이번 (영국, 우크라이나) 방문을 통해 에이태큼스를 러시아 국경 너머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러-나토 직접 충돌 우려…”3차 대전 배제 못해”
하지만 러시아는 이 경우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11일 기자들에게 “미국은 ‘적대적 조치’에 대한 우리 관용의 한계를 계속 시험하고 있다”며 “3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도 “그들이 무엇을 갖고 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군이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 영토 내에 스톰 섀도를 사용하는 것은 “불장난”이라고 위협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은 12일 “그것은 미국와 영국 등 나토 국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들의 직접적인 참전은 전쟁의 본질을 크게 바꿀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직면한 위협에 따라 적절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장거리 미사일 제한을 푸는 것은 기존의 드론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주장했다. 미사일로 원점 타격하기 위해선 서방의 위성 정보 등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참전’으로 규정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우크라이나 정권이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무인항공기(드론)와 다른 수단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을 사용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을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나토의 위성이 필요하고 발사는 나토군만 입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 핵 독트린 개정 중…푸틴, 핵 카드 꺼내나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자국의 핵무기 사용 기준을 정한 ‘핵 독트린(핵 교리)’를 수정 중이어서 핵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지금도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경우 등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0년 러시아 핵 독트린에 따르면 ▲적이 러시아 또는 동맹국에 핵무기나 기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경우 ▲러시아 또는 동맹국 영토를 표적으로 핵무기를 발사할 것이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한 경우 ▲핵 보복 능력이 훼손될 수 있는 시설이 공격받는 경우 ▲재래식 무기 공격으로 러시아 국가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경우 등에서 핵 무기 사용을 허용한다.
“‘서방 적’들에 무기 제공 가능성”…한반도에 불똥튀나
이와 함께 러시아가 ‘서방의 적’들에게 무기를 지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전선을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별도의 언론과의 대화에서 “러시아는 문제의 (장거리) 무기를 격추한 뒤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보복함으로써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매체 RT는 푸틴 대통령이 당시 언급한 대응책 중 하나는 ‘서방의 적’들에게 장거리 정밀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짚었다.
‘서방의 적’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서방이 통상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을 싸잡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중동이나 한반도에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거리 일부 완화?…美 일각선 “게임체인저 아냐” 신중론
다만 일각에선 여전히 신중론이 읽힌다.
영국 정부 소식통은 13일 미영 정상회담에서 의제엔 포함될 것이지만, 결정에 대한 발표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도발’로 여겨져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실제 미·영 정상은 회담 후 별도의 기자회견을 개최하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에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무기는 없다”면서 “우크라이나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활용하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타스통신은 전했다. 이 발언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 6일 독일 람슈타인 미군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방위연락그룹(UDCG) 24차 회의’에서 했던 발언이기도 하다.
이 외에 우크라이나의 과잉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 것이 아닌 일부 완화, 또 실제 타격이 아닌 수사적 허용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