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소설가 톨킨의 작품 ‘반지의 제왕’에 신비한 수정구슬이 나온다. ‘팔란티르(palantír)’라는 이름을 가진 이 구슬은 엘프어로 ‘멀리 보는 자’인데 우리말로 천리안(千里眼)쯤 된다. 이 구슬을 들여다보면 아무리 먼 곳의 일도 훤히 들여다 보인다. 해서 악의 군주 사우론은 이것으로 세상을 엿보고 자신의 생각을 결정하고 세상을 지배하려한다.
이런 소설 속 이야기가 2003년 실리콘밸리로 옮겨왔다. 톨킨의 세계관에 유별나게 매혹된 사람, 페이팔 창업자였던 피터 틸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회사들인 방위산업체, 자산운용사, 암호화폐 은행 등에 소설에 나오는 가상대륙 ‘가운데땅’의 이름들을 붙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정점에 빅 데이터 소프트웨어 플랫폼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가 있다.
피터 틸은 하버드 법대 동창 알렉스 카프와 의기투합해 팔란티어를 세웠다. CIA의 초기 투자를 받으며 출발한 이 회사의 첫 번째 고객 또한 CIA였다. 헌데 팔란티어의 핵심 소프트웨어 이름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배트맨의 어두운 범죄 도시, 고담(Gotham)이다.
이 시스템은 흩어진 위성 사진, 통신 감청 데이터, 드론 영상, 소셜미디어를 한데 모아 실시간으로 분석해 표적을 찾고, 위협을 예측하고, 작전 우선순위를 제시한다.
그러면 또 다른 AI기업인 앤트로픽이 다음 일을 맡는다. 챗봇 클로드로 알려진 이 AI 기업은 팔란티어가 종합한 방대한 문서와 정보를 읽고 요약하고 시나리오를 구성해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종 결정을 내려주는 일이다. 팔란티어가 전장의 눈이라면, 앤트로픽은 그 눈이 본 것을 해석하는 두뇌인 셈이다. 실제로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클로드를 정보 평가와 작전 시나리오 시뮬레이션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가지 아이러니. 앤트로픽이 자국민 감시나 자율 무기에 AI를 쓸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빌미로 연방기관의 클로드 사용을 금지했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클로드는 이란 핵시설 분석에 투입됐다.
아무튼 옛날 중국에 제갈량이 있었다. 그는 직접 싸우지 않았다. 장막 안에 앉아 별자리를 읽고, 지형을 분석하고, 적장의 심리까지 계산했다. 수십 리 밖 전황을 손바닥 보듯 꿰뚫었다. 해서 오늘날 팔란티어를 두고 ‘디지털 제갈량’이라 부르는 이유다. 팔란티어도 직접 싸우지 않는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합해 지휘관에게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지난 주, 이란을 겨냥한 미-이스라엘 합동 공습이 시작됐다. 폭격기와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는 동안, 작전의 신경망은 서버실 안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어떤 시설을 먼저 타격할지, 방공망을 어떻게 우회할지, 어느 시각에 어느 방향에서 진입할지 등 그 모든 계산의 대부분을 AI가 맡았다.
앞으로의 전쟁은 더 그럴 것이다. 예전에 베트남과 이라크 전쟁의 여론을 바꾸게 했던 종군기자들의 카메라가 사라진 그 자리를 AI의 눈으로 재편되고 드론, 위성, 열감지 센서 데이터가 고담 화면 위에서 합성된다. 전장은 하나의 대시보드가 되고 거기엔 공포도, 신음도, 우연히 잡힌 민간인의 얼굴도 없다. 단지 모든 것이 좌표와 숫자와 확률로 나타날 뿐이다. 이는 전쟁이 깨끗하고 단순해 보일수록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점점 더 보이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톨킨은 소설에서 ‘팔란티르를 들여다본 자들은 예외 없이 대가를 치렀다’고 경고한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카메라맨은 할 수 있다. AI도 마찬가지다. 수정구슬을 설계한 자가 누구인지를 잊는 순간, 그것은 도구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여기서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