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출신 세계적 배우 겸 칸토팝(홍콩 대중음악) 가수 장궈룽(張國榮·장국영·레슬리 청·1956∼2003)이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난 지 1일로 벌써 23년이 흘렀다.
2003년 만우절에 장궈룽이 세상을 떠났던 홍콩 센트럴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앞엔 올해도 추모객이 찾고 있다. 생전 고인이 좋아한 백합이 구름을 이뤘다.
장궈룽은 양복재단을 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영국 북부 리즈 대학에서 섬유직물관리학을 공부했다. 1977년 홍콩 ATV 주최 ‘아시아가요제’에서 2위로 입상하며 가수로 연예계에 먼저 데뷔했다.
1978년 영화 ‘홍루춘상춘’을 통해 배우 겸업을 시작했다. 홍콩 누아르 걸작 영화 ‘영웅본색'(1987)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해 왕쭈셴(王祖賢·왕조현)과 함께 주연한 영화 ‘천녀유혼'(1987)이 개봉하면서 신드롬이 됐다.
이후 푸른빛 허무함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장국영 본 모습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는 ‘아비정전'(1990)의 ‘아비’, 경극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심한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는 ‘패왕별희'(1993)의 ‘데이’, 주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동성애자인 ‘해피투게더'(1997)의 ‘보영’ 등으로 불멸의 아이콘이 됐다. 장궈룽 팬들이 그를 부르는 ‘거거'(哥哥·오빠)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특히 ‘아비정전’, ‘동사서독'(1994), ‘해피투게더’ 등을 통해 왕자웨이(왕가위·王家卫) 페르소나로 통했다.
장궈룽은 가수로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K팝 이전 아시아를 휩쓴 칸토팝을 이끈 주인공이다. 다수가 따라 부를 수 있는 광둥어(廣東語) 히트곡을 양산했다. ‘모니카(Monica)’, ‘무심수면(無心睡眠)’, ‘추'(追·Chase) 등이다. ‘풍계속취(風繼續吹)’, ‘패왕별희’ 주제곡 ‘당애이성왕사(當愛已成往事)’ 등도 대표적이다. 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은 그가 콘서트에서 자주 부른 노래다.
무엇보다 전통적 남성성에 대해 균열을 낸 배우로서 최근 젠더를 가로지르는 문화에 대한 큰 관심을 갖는 Z세대 사이에서 조명되며 젊은 팬들을 여전히 양산 중이다. 장궈룽 역대 콘서트 중 최고 무대로 통하는 1997년 ‘과월97연창회(跨越97演唱會)’ 때 신었던 빨강 하이힐 등이 그를 상징한다.
2000년대 초반 장궈룽의 콘서트 안무를 맡았던 크리스 최(Chris Choi)는 과거 AP통신에 “장궈룽은 ‘유니섹스’ 아이디어를 도입함으로써 많은 성별의 경계를 돌파했다. 예컨대 그의 무대 의상 중엔 조개껍데기 모양의 퀼로트(짧은 바지처럼 생긴 스커트)와 빨간 하이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장궈룽은 특히 당시 보수적인 지역 사회에서 동성애 관계를 과감하게 드러냄으로써, 도시 내 문화적 현상을 만들었다고 외신들은 평가하고 있다. 문화 다양성에 보탬이 됐다는 것이다. 장궈룽은 실제로 국경을 넘어 목소리를 내고 홍콩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장궈룽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89년 국내 제과회사 오리온의 ‘투유 초콜릿’ CF에 출연해 이 제품의 매출을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한 점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또 수차례 내한해 ‘쟈니윤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1989년엔 가수 이선희와 합동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주성철 지음), ‘아무튼, 장국영'(오유정 지음) 등 고인을 다룬 책들은 그의 기일 전후로 매년 주목 받고 있다.
올해 역시 국내에서 장궈룽을 기억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 이날 재개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