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순서가 성격뿐 아니라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첫째는 자폐증과 ADHD, 알레르기 질환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둘째는 편두통과 대상포진, 위장질환 및 약물남용 문제가 더 많이 나타났다.
시카고대와 컬럼비아대 연구진이 미국 형제자매 1천만명 이상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출생 순서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인 질환이 무려 150개에 달했다.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헬스(Nature Health)’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약 20년에 걸친 의료보험 청구 데이터를 이용해 569개 질환을 조사했으며, 충분한 환자 수가 확보된 418개 질환 가운데 150개에서 첫째와 둘째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발견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첫째의 정신·신경발달 질환이었다.
첫째는 둘째보다 자폐증과 ADHD, 틱·투렛증후군, 강박장애(OCD), 불안·공포장애 등이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났다. 특히 자폐증의 경우 둘째의 발생 가능성이 첫째보다 약 26% 낮은 것으로 분석됐으며, 틱·투렛증후군도 둘째가 약 31% 낮았다.
첫째는 알레르기에도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음식 알레르기는 둘째가 첫째보다 약 20% 낮았고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 역시 첫째에게 더 많이 나타났다. 여드름 등 일부 피부질환도 첫째 쪽에서 높은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둘째가 더 취약한 질환도 적지 않았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 대상포진 위험이 약 35% 높았으며 약물·알코올 등 물질사용 장애는 약 19%, 위염·십이지장염은 약 14%, 편두통은 약 13% 높았다. 담도질환과 과민성대장증후군 등 일부 소화기 질환도 둘째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전체 150개 질환 가운데 79개는 첫째에게, 71개는 둘째에게 더 많이 나타나 어느 한쪽이 전반적으로 더 건강하거나 병약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대신 출생 순서에 따라 취약한 질환의 종류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연구진은 첫째와 둘째가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부모의 관심과 양육 환경, 미생물과 감염원에 노출되는 시점, 임신 당시 산모의 생물학적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알레르기의 경우 첫째는 형이나 누나가 없어 어린 시절 미생물에 노출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둘째는 이미 학교나 외부 활동을 하는 첫째를 통해 다양한 미생물에 일찍 노출될 수 있다는 이른바 ‘위생 가설’로 일부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연구 결과를 “첫째로 태어나면 자폐증에 걸린다”거나 “둘째는 대상포진에 잘 걸린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번 연구는 출생 순서와 질병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을 보여준 것으로 출생 순서가 해당 질환을 직접 일으킨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연구에 사용된 자료 역시 상업 의료보험 가입자들의 진료 기록이어서 부모가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는 빈도나 진단 과정의 차이가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진은 출생 순서를 개인의 질병을 예측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인구 전체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건강 위험 지표’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상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