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한 병사가 큰 고목 앞에서 노파를 만나게 되었다. 노파는 그 나무 속 깊은 구명 속 밑바닥에 있는 많은 돈을 갖는 대신 부싯돌 상자 하나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병사가 웬 횡재인가 싶어 허리에 밧줄을 매고 나무 구멍 안으로 들어가자 세 개의 문이 나타났다. 문 앞에는 각각 금, 은, 동으로 된 동전들이 가득했고 눈이 아주 큰 개들이 앉아 지키고 있었다.
노파가 준 앞치마를 펼쳐 그 위에 개를 앉히니 얌전해져서 병사는 돈들을 가득 챙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부싯돌 상자도 가지고 나왔다. 갑자기 상자 내용이 궁금해진 병사는 노파에게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답을 해 주지 않자 그녀를 죽이고 가지고 나온 돈과 부싯돌 상자까지 챙겨 달아났다.
때 아닌 일확천금으로 부유해진 그는 어려운 사람들도 도와주고 호화로운 생활에 돈을 마구 쓰다 보니 어느 새 빈털터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공주가 평범한 군인과 결혼하게 된다는 예언에 화가 난 왕이 공주를 성탑안에 가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병사는 부싯돌 상자를 떠올리고 부싯돌을 한번 치자 첫번째 개가, 두 번을 치자 두번째 개가, 세 번을 치자 세번째 개가 나타나 돈들을 가져다 주어 다시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개들에게 공주도 몰래 데리고 해 지내다가 그만 꼬리가 잡혀 사형위기에 처했다. 죽기 전에 담배 한 대만 피우겠다는 청을 올리고 부싯돌을 치자 개들이 다시 나타나 왕과 왕비, 대신들을 모두 공격해 몰아내고는 병사를 구해주었다. 겁에 질린 군중들은 병사를 왕으로 추대하고 공주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안데르센의 ‘부싯돌 상자’ 이야기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요새 기준으로 말하자면 R등급이랄 수 있다. 당시 유럽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해 지적한 것이겠지만 이유없는 폭력과 살생 그리고 납치 등의 어두운 면이 많아서다. 그래서 그런지 ‘부싯돌 상자’는 ‘일확천금’이나 ‘폭력’ ‘전쟁’ 등의 키워드로도 잘 쓰인다.
이 동화가 떠오른 것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 보도 때문이다. 최근 해외 언론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부싯돌 상자 ‘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동북 아시아에서는 남북한은 물론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에 엄청난 병력과 화력이 집중돼 있다. 자칫 잘못하면 부싯돌 상자에서 위험한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이러한 상황에 러시아 푸틴은 지금 사면초가다. 병사가 부족해지자 용병회사 바그너그룹을 통해 메꾸었다. 하지만 프레고진 숙청으로 용병들이 흩어져 그마저도 바닥이 나자 북한 김정은에게 손을 벌린 것이다. 무기고도 비었다.
결국 푸틴의 절박한 요구에 북한이 최정예 특수부대 병력10,000 여명 파병을 준비하고 선발대는 이미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남북한 연결도로와 철도 폭파 등 한반도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키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들 북한 지상병력의 비상배치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김정은이 요구할 ‘비용 청구서’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마도 핵무장 기술 고도화와 이에 따른 여파를 배제할 수 없을거다. 이런 푸틴과 김정은의 의기투합은 1950년 스탈린-김일성 회담을 연상시키고 보다 더 치명적일 수도 있다.
국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합하는 국제질서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욕망과 권력의 어두운 이면을 경고했던 부싯돌 상자! 모쪼록 그 부싯돌이 전쟁의 불씨가 아닌 평화와 번영의 불씨를 되살리는 상자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