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조지아주 현대차-LG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을 포함한 475명을 체포하는 일이 벌어졌다.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비자 위반 사건처럼 보이지만, 이는 한국 정부의 비자 외교 실패, 미국의 고용 정책, 그리고 글로벌 산업 협력의 비대칭성이 얽힌 문제였다.
애초에 한국은 대규모 해외 투자를 뒷받침할 숙련 인력 파견을 위해 E-4 전문직 전용 비자 신설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미국의 ‘자국 고용 우선’ 기조 앞에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고, 결국 기업들은 단기체류비자 남용이라는 편법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 공백에서 이번 사태가 현실로 터져 나온 거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조적 리스크가 충분히 예견 가능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과거 일본, 독일, 중국 등 다른 나라 기업들에게도 비슷한 압박을 가한 전례가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를 교훈 삼지 못했고, 단기 성과와 속도전에만 매달리다 보니 불가피한 사고가 아니라 방치되었던 위험이 현실화된 사건인 셈이다.
미국은 ‘투자는 환영하지만 미국인 일자리를 침해하는 외국 인력 투입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신호와 동시에 향후 비자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는 미국이 동맹관계라해도 규칙을 쥐고 흔드는 비대칭적 힘을 행사하고 있는 거다.
특히 이번 사건은 ‘첨단산업 동맹’이라는 외교적 수사와 현장의 현실 사이의 공백을 여실히 드러냈다. 반도체-배터리 같은 전략산업에서 한국은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지만, 미국은 제도적 장치를 열어주지 않았다. 동맹은 강조하면서도 동등한 파트너십은 부재한 것이다.
체포 사태 이후 한국정부는 전세기 송환과 긴급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는 사후적 대응일 뿐이었다. 근본적으로 합법적 비자체계활용, 현지인력양성, 제도개선을 위한 외교적 로비 등 사전 전략이 부재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의 ‘속도전’과 정부의 ‘안일한 대처’가 맞물리며 일어난 사태로 보인다.

기업 차원에서도 숙련 인력의 본국 의존도를 낮추고 현지 인력을 단계적으로 훈련시키는 체계적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단기 프로젝트마다 수많은 인력을 급파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업계 차원에서 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미의회, 주정부, 노동계와 소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 개별 기업이 각자도생하는 방식으로는 구조적 장벽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내 언론은 처음에 ‘한국인 불법 노동’ 같은 자극적 제목으로 개인 책임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이런 보도는 여론을 왜곡할 뿐 아니라 한국인 전체를 ‘불법 노동자 집단’으로 낙인찍을 위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짚을 책임이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국 노동자들의 불법 여부가 아니라, 한국산업정책과 외교전략, 그리고 한-미 협력의 불평등 구조까지 포괄하는 문제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를 구조적 차원에서 분석하지 못한다면 대중은 사태의 깊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표면적 비난에 머물 수밖에 없는 거다.
이번 한국 사례는 결코 예외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역사적으로 다른 국가들과도 같은 갈등을 불러온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역사적으로 1980~90년대 일본 자동차 기업의 미국 진출이나 2000년대 중국 기업의 아프리카 투자, 걸프 국가의 남아시아 인력 파견 등 모두가 같은 갈등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한국은 그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학습하지 못했고 ‘동맹국이니 예외를 줄 것’이라는 안일한 기대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사태는 단순한 비자 위반 사건이 아니고 E-4 비자 협상 실패와 제도적 공백이 드러낸 구조적 결과이고 동맹 관계의 불균형을 보여주는 사건이랄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비자는 행정절차가 아니라 산업과 투자, 외교에서 중요한 변수이므로 편법이 아닌 제도적 장치와 치밀한 외교 전략으로 난제를 풀 숙제로 받아 들여져야 할거다.
다시 말해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 경쟁의 중요한 축으로서 미국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요구할 수 있는 외교적 힘과 산업적 자원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재숙고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