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들은 밤마다 잠자리를 바꾸고 처자식에게조차 숨겼다. 자객의 그림자가 언제 닥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해서 등장한 존재가 ‘카게무샤(影武者:그림자무사)’, 군주와 닮은 대역을 세워 적의 표적을 흐리게 하는 인물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를 소재로 동명의 ‘카게무샤’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다케다 신겐이 전장에서 총상으로 죽자 신겐의 동생은 적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지 않기 위해 그와 닮은 도둑을 대역으로 내세워 3년간이나 가문의 내부 사람들까지 속이며 숨겼다는 이야기다.
이 원리는 현대에 와서 더욱 정교해졌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암살 위협에 시달린 대표적인 현대 정치인이었다. 그 중 특히 유명한 것이1962년 쁘띠클라마르(Petit-Clamart) 암살 미수 사건이다. 프랑스로부터 알제리 독립에 반발한 비밀군사조직(OAS) 요원들이 드골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차량에 100여발의 총탄을 퍼부어 난자했고 타이
어까지 손상됐지만 드골과 부인은 무사했고 운전기사는 차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가속해 공항으로 향했던 사건이다.
헌데 드골의 경호에서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방탄차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 보안당국은 여러 대의 비슷한 차량과 가짜 비행기 등을 이용해 드골의 실제 위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암살자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때로는 더 두꺼운 장갑판이 아니라 암살자가 무엇을 쏘아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decoy(미끼)다. ‘decoy’라는 말 자체는 가짜 오리 모형으로 진짜 오리를 유인해 사냥하던 방식에서 왔다. 현대전에서는 가짜 전차, 교란용 레이더 신호, 미사일을 속이는 채프(chaff)와 플레어(flare)로 발전했고, 민간에서는 해커를 유인하는 ‘허니팟’이 디지털판 디코이 역할을 한다.
아무튼 고대 황제로부터 오늘의 국가 정상 경호에까지 똑같이 생긴 차량 여러 대를 행렬에 섞어 실제 중심 인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다.
이 오래된 전술이 최근 다시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지난달 튀르키예 NATO 정상회의를 마친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길에 은밀히 비행기를 바꿔탄 사실이 WP와NYT 보도로 드러났다. 암살 위협 정보를 입수한 비밀경호국(USSS)는 대통령에게 전용기 교체를 권고했고, 트럼프는 기내식 운반 트럭 컨테이너에 몸을 숨긴 채 별도의 공군 수송기로 옮겨탔다.
취재진과 참모진이 남은 구형 에어포스원은 결과적으로 ‘미끼(decoy)’ 비행기가 됐고, 백악관은 대통령이 그 비행기에 그대로 탑승해 있다고 발표했다. 수 시간 동안 미 정부 고위 인사들조차 대통령의 실제 위치를 알지 못했던 거다.
유사한 선례로 2000년 클린턴 대통령이 파키스탄 방문 시 뒤따르던 다른 항공기에 탑승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취재진과 참모진 전체를 모르게한 규모의 기만 작전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 모든 사례를 관통하는 고전이 바로 손자병법이다. ‘계편’의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 즉, ‘전쟁이란 속임수의 길’이라는 구절은 능력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쓸 것이면서도 안 쓰는 것처럼 보이라고 조언한다.
‘허실편’의 허(虛)와 실(實)을 뒤섞어 적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도 정확히 트럼프 전용기 사례에서 재현됐다. 겉으로는 ‘실’ – 대통령이 탄 것처럼 보인 에어포스원 – 이지만 실제로는 ‘허’, 빈 상징일 뿐인 미끼였던 것이다.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 무사부터 21세기 대통령의 기내식 트럭까지—권력자를 겨눈 위협과 그에 맞선 기만술은 시대와 기술이 바뀌어도 같은 논리 위에 서 있는 거다. 무기가 창과 칼에서 드론과 정찰위성으로 바뀌었을 뿐, ‘어디에 진짜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여전히 가장 확실한 방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가장 오래되고도 여전히 유효한 생존의 기술로 손자가 말한 속임수, 궤도(詭道)는 칼과 창의 시대에도, 전용기와 드론의 시대에도 똑같이 통용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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